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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문턱과 이름

# 5화. 문턱과 이름 R-12 잔해 접속교는 오래전에 폐쇄된 길답게, 처음부터 사람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서 있었다. 정식 안내등은 꺼진 지 오래였고, 대신 임시 봉쇄 표식이 여러 겹 덧붙어 있었다. 접근 금지, 구조 불안정, 잔존 기록 오염 가능성. 어느 하나만으로도 발길을 돌리게 만들 문구들이었지만, 시온은 원래 그런 표지판이 많을수록 더 안쪽을 봐야 하는 경우를 자주 겪었다. 잠금 장치 옆면엔 최근에 한 번 긁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래 닫혀 있던 문이 아니라, 최근에 누군가 억지로 열고 다시 닫은 문. 시온은 그 결을 손끝으로 한 번 훑은 뒤, 바로 몸을 낮췄다. “외부 잠금은 죽었어.” 서린이 등 뒤에서 물었다. “좋은 뜻?” “아니. 안쪽에서 임시로 다시 걸어둔 거지.” “더 별로네.” 시온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잠금 홈 안쪽엔 규격이 다른 긁힘이 두 개 섞여 있었다. 하나는 항구 쪽 싸구려 개방툴 흔적이고, 다른 하나는 훨씬 정교했다. 둘 다 이 문을 열려고 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둘 중 하나는, 분명 이 문 안에 들어갔다. 단순히 숨으려고 든 손이라기보다, 안에 남겨진 걸 한 번에 다 가져가지 못해 다시 닫고 버틴 손에 가까웠다. 그는 회수 포켓에서 얇은 접속 핀을 꺼내 잠금 홈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서린은 곧바로 주변 시야를 넓혔다. 아래쪽 난간, 윗층 연결교, 옆 벽면에 달린 죽은 감시 렌즈까지. 둘 다 이제 말이 줄어드는 구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금속 안쪽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이 손끝으로 올라왔다. 죽은 줄 알았던 회로가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열리면?” 서린이 물었다. 시온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답했다. “안에 누가 살아 있으면 사람부터 보고, 아니면 기록부터 찾지.” “둘 다 있으면.” “그때 가서 더 귀찮아지겠지.” 철컥. 안쪽 걸쇠 하나가 먼저 풀렸다. 이어 아주 낮은 금속음과 함께 문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밀려났다. 그 틈 사이로 오래된 먼지 냄새와 함께, 익숙한 냄새 하나가 더 새어 나왔다. 탄 냄새였다. 시온과 서린은 동시에 시선을 마주쳤다. 그건 아까 회수물에서 맡았던 냄새와 같은 계열이었다. 오래되었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일부러 지운 흔적이 남긴 냄새. 시온이 문을 더 밀어 열려는 순간, 위쪽 난간에서 목소리가 하나 떨어졌다. “거기서 멈추십시오.” 둘은 동시에 위를 올려다봤다. 상층 연결교 그림자 끝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하나는 검은 외투를 걸친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그 반 걸음 뒤에서 주변을 먼저 읽고 있는 수행자였다. 항구 인부도, 브로커도, 민간 경비도 아닌 걸음. 너무 정돈돼 있었고,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사람들의 공기였다. 서린이 낮게 욕했다. “좋아. 더 귀찮은 냄새 왔네.” 시온은 손을 문에서 떼지 않은 채 위를 올려다봤다. “동맹 외곽항로 관리국은 아닌데.” “그건 나도 보여.” 상층 난간의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항구 조명 아래 드러난 얼굴은 지나치게 정리돼 있었다. 이 도시의 공기와는 맞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딱 그만큼, 오래 질서 속에 서 있던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다. 아테르 발카르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문은 현재 제국 승인원 확인선에 들어갔습니다.” 시온은 그 말에 아주 짧게 웃었다. “확인선은 늦었네.” 세른의 시선이 곧바로 그에게 꽂혔다. 말투는 가벼웠지만, 문 앞에 선 남자는 이미 잠금 장치를 절반 이상 읽고 있었다. 단순한 현장 인부가 아니었다. 아테르는 시온을 잠깐 보다가, 그의 옆에 선 서린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하나는 흔적을 먼저 읽고, 하나는 사람이 무너질 지점을 먼저 보는 배치. 멀리서 스쳤던 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동맹 외곽항로 관리국 소속입니까.” 이번엔 시온이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틈 사이 어둠을 한 번, 위쪽 난간의 검은 외투를 한 번 번갈아 봤다. “그쪽은 제국 승인원인가 보네.” “질문에 답하십시오.” 세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이 서 있었다. 서린이 바로 끼어들었다. “좋네. 늦게 와서 문 앞에 서자마자 취조부터 하시고.” 세른이 그녀를 봤다. 서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현재 이 장소는 폐쇄 구역입니다.” “우리도 글은 읽어요.” “읽고도 들어가려 했군요.” “그쪽도 왔잖아.” 짧은 침묵. 시온은 그 짧은 말 몇 개만으로도 위쪽 둘의 결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앞에서 말하는 남자는 권한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뒤쪽은 그보다 더 위험했다. 명령보다 움직임을 먼저 읽는 쪽. 둘 다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더 수상했다. 아테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문 안쪽에서 최근 열 흔적이 감지됐습니다. 무턱대고 여는 건 위험합니다.” 시온은 그 말에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냄새를 다시 맡았다. 탄 냄새, 오래된 먼지, 약하게 스친 오존 냄새. 그리고 아주 미세하지만,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체온 같은 공기. “그래서 더 빨리 열어야지.” 아테르의 눈빛이 아주 얕게 달라졌다. “무슨 근거로.” 시온은 এবার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봤다. “누가 안에 있었어. 그것도 얼마 안 됐고.” 위쪽 난간의 공기가 잠깐 멈췄다. 세른은 아테르보다 먼저 반응했다. “왜 그렇게 판단하죠.” “탄 냄새가 새 거야. 먼지도 안쪽으로만 죽어 있지 않고, 바깥으로 한 번 더 밀려 나왔고. 무엇보다—” 시온은 잠깐 멈췄다가 문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안쪽에서 한 번 다시 걸어 잠갔어. 도망친 사람이든, 숨은 사람이든, 살아 있었다는 뜻이지.” 서린은 속으로 `좋아, 또 시작이다` 싶은 얼굴이었지만 말리진 않았다. 저런 톤으로 말할 때 시온은 대개 틀리지 않았다. 아테르는 아래를 내려다본 채 한 박자 침묵했다. 현장 판단 자체는 타당했다. 문제는 그 말을 하고 있는 인간이, 지나치게 현장 쪽으로 빨랐다는 점이었다. 동맹 외곽항로 관리국 실무자라면 흔적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냄새로 판단하고 있었다. 세른이 낮게 물었다. “각하.” 아테르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답했다. “내려갑니다.” 서린이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좋네. 이제 넷이서 사이좋게 문 여는 거야?” 시온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더 별로한데.” 아테르와 세른이 아래층에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가까이에서 본 아테르는 위에서 봤을 때보다 더 또렷하게 정리된 사람이었다. 검은 외투, 단정한 장갑, 조용한 눈. 반대로 시온은 더 너저분했고, 서린은 더 날카로워 보였다. 정반대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문 앞에 선 느낌이었다. 세른이 먼저 잠금 장치를 확인하려 다가오자, 시온이 한 발 반쯤 옆으로 움직이며 막았다. “그건 내가 먼저 보고 있었는데.” 세른의 시선이 얇아졌다. “그래서 아직 열지 못한 겁니까.” 서린이 바로 끼어들었다. 서린이 혀를 찼다. 시온은 피식 웃었다. “원래 정리된 사람들은 말이 예뻐.” 아테르는 둘 사이를 잠깐 보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 “지금은 말보다 안쪽이 우선입니다.” 그 문장 하나로 공기가 조금 정리됐다. 권한을 내세우는 말이었지만, 최소한 쓸데없는 실랑이를 길게 끌 생각은 없는 사람의 말이었다. 시온은 잠시 문을 보고, 아테르를 보고, 다시 문을 봤다. “…좋아. 대신 열면 먼저 안쪽 판단은 내가 한다.” 세른이 곧바로 반박하려 했지만, 아테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대신 기록이 나오면 그건 제 쪽도 봅니다.” 서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나눠 먹네.” 시온은 못 들은 척하고 다시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른도 이번엔 한 걸음 물러서서, 대신 주변과 문 너머 기척을 읽는 쪽으로 섰다. 이상하게도 넷은 처음 모였는데, 이미 각자 서야 할 자리에 서 있었다. 시온이 접속 핀을 다시 잠금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번엔 반대쪽에서 아테르가 손목 단말을 꺼내 죽어가는 회로를 임시로 깨웠다. 낡은 승인 구조와 현장 개방툴이 억지로 한데 물리자, 잠금 장치 안에서 신경질적인 떨림이 퍼졌다. “정말 이 조합 마음에 안 든다.” 서린이 중얼거렸다. 세른이 거의 동시에 받았다. “동감입니다.” 둘이 잠깐 서로를 봤다. 그 짧은 눈맞춤만으로도 둘 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건 알아버렸다. 철컥. 이번엔 안쪽 걸쇠 두 개가 한꺼번에 풀렸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은 예상보다 더 어두웠다. 무너진 접속 통로와 끊어진 전선, 바닥에 흩어진 오래된 기록 케이스, 그리고 벽면을 따라 남은 검은 그을음. 누군가 이곳에서 기록을 태우려 했거나, 태운 뒤 떠났거나, 둘 다였을 것이다. 시온이 먼저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발끝에 닿은 먼지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느낌이었다. 서린이 바로 뒤를 받쳤고, 아테르와 세른이 나란히 따라 들어왔다. 통로 안쪽 깊은 곳, 반쯤 열린 보존실 문 앞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기대어 있었다. 사람이었다. 모두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시온이 가장 먼저 다가갔다. 낡은 작업 외투, 피가 굳은 어깨, 한 손엔 깨진 저장 캡슐 파편. 하지만 이미 숨은 붙어 있지 않았다. 얼굴은 절반쯤 그을렸고, 입가엔 마른 피가 선처럼 남아 있었다. 서린이 아주 낮게 말했다. “늦었네.” 아테르는 시체보다 먼저 그 주위 바닥을 봤다. 끌린 흔적, 무릎 꿇은 자국, 급히 문을 닫으려다 실패한 흔적. 이건 단순한 살해 현장이 아니라, 누군가 마지막까지 뭔가를 남기려 한 자리였다. 누군가 가져가고, 누군가 남기고, 누군가 그 남은 걸 다시 묻으려 했던 자리이기도 했다. 세른은 보존실 안쪽을 훑다가 짧게 말했다. “아직 완전히 비워지진 않았습니다.” 시온은 시체 손에 쥔 캡슐 파편을 조심스럽게 빼내려다 멈췄다. 파편 아래쪽 손가락에 검은 재가 잔뜩 끼어 있었다. 불을 만진 손이 아니라, **타기 직전의 기록을 끝까지 쥔 손**이었다. 그리고 그 손 아래, 바닥에 떨어진 얇은 기록판 조각 하나가 아주 희미하게 빛을 반사했다. 시온이 그걸 들어 올렸다. 잘린 문장, 불에 죽은 가장자리, 도려낸 서명선. 그리고 이번엔, 이전보다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아테르의 시선도 그 조각 위로 떨어졌다. 서린과 세른도 동시에 숨을 죽였다. 조각 한가운데, 불길과 칼자국 사이에 끝내 지워지지 못한 이름 몇 글자가 남아 있었다. **… 준 아스테…** 그 순간, 통로 안의 공기가 통째로 멈춘 것 같았다. 시온은 손안의 조각을 내려다본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린도 아무 말 못 했다. 세른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아테르는 그 짧은 이름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워진 줄 알았던 이름이, 죽은 기록수의 마지막 자리에서 끝내 다 타지 못한 채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보존실 안쪽 어딘가에서 자동 보존 장치 하나가 아주 낮게 깨어나는 소리가 울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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