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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같이 온 게 아니네

# 10화. 같이 온 게 아니네 문이 완전히 열리기 전부터, 안쪽 공기부터가 달랐다. 오래된 종이 냄새, 눅눅한 목재, 기록 보존 약품, 먼지, 향신료, 그리고 어디선가 막 뜯은 과자 냄새까지 한데 섞여 있었다. 질서 없이 섞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썩은 냄새는 아니었다. 버려진 것과 남겨둔 것이 뒤섞인 공간 특유의, 오래 살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장소의 냄새였다. 문은 생각보다 천천히 열렸다. 안쪽엔 천장 가까이까지 닿은 보관 선반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낡은 기록 케이스, 봉인 상자, 파손된 저장 캡슐, 이름이 바랜 유품 상자, 종이 묶음, 오래된 전자판, 그리고 분류가 끝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공무원 보관실 같기도 했고, 망한 전당포 같기도 했고, 어딘가 잘못된 아카이브 같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몇몇 케이스엔 지워진 항로 표식이 남아 있었고, 몇몇 상자엔 봉인 실패 흔적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한가운데 좁은 책상 하나가 있었고, 그 뒤에 엘리아 베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손에 과자 봉지를 들고 있었다. 과자를 먹다 말고 문 쪽을 본 사람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시선만큼은 처음부터 흐트러짐이 없었다. 둥글고 생활감 있는 체형, 편한 셔츠, 아무 데나 걸쳐 입은 겉옷. 얼핏 보면 허술해 보였다. 그런데 그 허술함과 별개로, 문 앞에 선 네 사람을 한 번에 읽고 있다는 게 너무 분명했다. 시온은 속으로 짧게 생각했다. 역시 그대로네. 반면 아테르는 전혀 다른 걸 느꼈다. 허술해 보이는데, 시선이 한 번도 헛돌지 않았다. 방 안 어딜 봐도 쌓여 있는 물건이 저렇게 많은데, 이 사람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쪽 같았다.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엘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대신 과자 하나를 입에 넣은 채 네 사람을 차례로 훑었다. 시온, 서린, 검은 외투의 낯선 남자, 그리고 말보다 먼저 상황을 읽는 그림자 같은 한 명.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엔 진짜 크게 물었네.” 짧은 침묵. 그녀는 과자 봉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덧붙였다. “같이 온 게 아니네. 같이 쫓겨왔구나.” 그 말에 선실에서부터 이어지던 불편한 공기가 또 한 번 얇게 갈라졌다. 서린이 제일 먼저 웃을 뻔했다. “좋네. 들어오자마자 그걸 읽네.” 엘리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쉬워. 같이 온 사람은 문 앞에서 그렇게 안 서거든.” 그녀가 턱으로 문턱 쪽을 가리켰다. “하나는 제일 먼저 들어올 준비 돼 있고, 하나는 그 인간이 먼저 맞을 자리 보고 있고, 하나는 여길 왜 와야 하나 아직 반쯤만 납득한 얼굴이고, 마지막 하나는 들어오기 전부터 나갈 길 계산 중이잖아.” 세른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아테르도 말이 없었다. 방금 들어선 공간 주인이 자신들을 너무 빨리 읽었다는 사실이 둘 다 달갑진 않았다. 시온은 피식 웃으며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반갑다, 엘리아.”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엘리아가 즉답했다. “네가 여기 올 때마다 반가운 적이 별로 없거든.” “너무하네.” “사실이야.” 서린이 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좋아. 오늘 분위기 제일 정상이다.” 엘리아는 그 말에 짧게 웃은 뒤, 드디어 아테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낯설다는 반응보단 분류를 마친 얼굴에 가까웠다. 닫는 쪽 인간, 권한 쪽 인간, 그런데 이미 안에서 한 번 흔들린 사람. “저쪽은 뭐야.” 질문은 시온에게 갔지만, 말투는 완전히 시비도 완전한 예의도 아니었다. 아직 분류를 끝내지 않은 사람에게 두는 얇은 거리감 정도. 시온이 어깨를 기울였다. “지금은 필요한 사람.” “그 말은 곧 귀찮은 사람이란 뜻이지.” “이번엔 좀 많이.” 엘리아는 아테르를 잠깐 더 보다가, 이번엔 세른 쪽으로 눈을 옮겼다. “그리고 저쪽은 필요한 사람 옆에 붙은 더 귀찮은 사람.” 세른이 아주 낮게 대꾸했다. “정확하군요.” “고마워. 난 원래 정확해.” 아테르는 그 대화를 듣고도 바로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방 안을 한 번 더 훑었다. 이 공간은 허술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게 아니었다. 동선이 있었고, 거리감이 있었고, 무엇을 어디까지 손 닿게 두는지 계산되어 있었다. 제국이 무질서라고 부를 방식일 뿐, 질서가 없는 공간은 아니었다. 엘리아는 그런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너는 처음 오지.” 아테르가 그제야 그녀를 봤다. “그렇습니다.” “티 나.” “그렇게 보입니까.” 엘리아는 피식 웃었다. “응. 여길 창고처럼 보는데, 동시에 창고로만 안 보는 얼굴이거든.” 그 말이 끝난 뒤 잠깐 정적이 흘렀다. 시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품 안쪽에서 조각을 꺼냈다. 타고, 잘리고, 도려내진 기록판 조각. 죽은 기록수 자리에서 끝내 남은 것들. 엘리아의 시선이 그 조각에 닿는 순간, 방 안 공기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이번엔 진짜로 읽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지만 바로 잡지는 않았다. “얼마나 많이 봤어.” 시온이 짧게 답했다. “이름까지.” 엘리아의 눈빛이 아주 조금 깊어졌다. “좋네. 그럼 이제 너희 전부 이름 걸린 거네.” 서린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안 그래도 그 상태라서 왔어.” “봤지.” 엘리아가 건조하게 답했다. “문 앞에서부터.” 그녀는 그제야 조각을 받아 들었다. 손놀림은 조심스럽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오래 이런 걸 만져온 사람 특유의 거리감이었다. 너무 귀하게 들지도 않고, 함부로 다루지도 않는. 조각을 한 번 뒤집고, 빛에 비추고, 손톱으로 잘린 단면을 가볍게 긁던 엘리아가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이건…” 시온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서린도 말이 없었다. 세른은 엘리아 손끝 움직임을 보고 있었고, 아테르는 그보다 더 조용히 그녀 얼굴을 보고 있었다. 엘리아는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누가 지운 게 아니라, 끝내 다 못 지운 거야.” 그 말 한마디에, 지금까지 손에 들고만 있던 조각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온은 아주 천천히 물었다. “보여?” 엘리아는 대답 대신 조각을 다시 빛에 기울였다. 불에 죽은 가장자리, 도려낸 단면, 남겨진 이름 조각, 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남은 선 하나. “이름이 남은 게 먼저 눈에 들어오지.” 그녀가 낮게 말했다. “근데 진짜 이상한 건 그게 아니야.” 아테르가 처음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엘리아는 그 움직임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손끝으로 조각 아래쪽 잘린 자리를 톡 두드렸다. “여기.” 짧은 정적. 그리고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이름보다 먼저 죽은 건 순서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네 사람 모두가 방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턱 위에 올라섰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엘리아는 아직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판결은 남겼는데, 그 앞뒤의 망설임은 다 도려냈네.” 그녀는 잘린 단면을 한 번 더 손톱으로 긁었다. “이런 건 그냥 깨져 나온 조각이 아니야. 한 번에 다 넘어가면 안 되는 걸, 일부러 나눠 남긴 쪽에 더 가까워.” 그 방 안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이제야 모두가 알았다. 이건 죽은 기록수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지워진 이름 하나의 문제만도 아니었다. 엘리아는 조각 위에 손끝을 얹은 채, 네 사람을 차례로 한 번 훑었다.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침묵이었다. 누구도 아직 다음 질문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누군가 결국 그 질문을 해야 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침묵. 그리고 그 순간, 지워진 이름을 되찾는 일은 처음으로 정말 다른 세계를 건드리는 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응원은 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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