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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먼저 지나간 손

# 23화. 먼저 지나간 손 구조물 안쪽에서 살아난 유도 반응은 약했고, 최근 이탈 흔적은 분명했다. 둘 중 하나만 있었다면 판단은 쉬웠을 것이다. 유도 반응만 남아 있었으면 더 안쪽을 확인했을 것이고, 최근 흔적만 있었다면 바로 추적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둘 다 있었다는 점이었다. 남은 길도 아직 죽지 않았고, 더 큰 조각을 먼저 빼간 누군가도 아주 오래 전에 사라지지 않았다. 시온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정하자. 더 안쪽 먼저 볼지, 지금 꼬리 물지.” 시온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눈은 여전히 구조물 안쪽 어둠과 슬롯 바깥 최근 흔적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더 큰 조각을 빼간 놈이 남긴 체중 이동 자국, 미세하게 긁힌 금속면, 그리고 아주 급하게 돌아 나가며 한 번 몸을 틀었던 흔적. 그건 도망친 사람의 흔적이면서도, 동시에 이 구조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의 흔적이었다. 세른이 낮게 말했다. “추적한다면 지금이 가장 가깝습니다. 더 늦으면 먼지층과 진동이 흔적을 죽입니다.” 아테르는 거의 동시에 다른 쪽을 짚었다. “하지만 더 안쪽에 남은 반응이 끊기면, 이 구조물 전체를 다시 여는 비용이 커질 수 있습니다.” 한지우가 선체 쪽에서 낮게 말했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네. 그래서 더 싫다.” 시온은 안쪽 어둠을 보다가 아주 천천히 말했다. “둘 다 가져갈 순 없어.” “당연하지.” 시온이 낮게 말했다. “그래서 지금 정하자는 거잖아.” 세른은 최근 이탈 흔적 근처를 다시 살폈다. 먼지층이 한 번 끊겼고, 미세한 금속 가루가 바깥쪽으로 흩어져 있었다. 급하게 물건을 빼든 사람이면 무게중심이 더 크게 흔들렸을 텐데, 이 흔적은 의외로 정돈돼 있었다. 서둘렀지만 무너지진 않은 움직임. 즉, 현장에 익숙한 사람.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상대는 최소한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서두르면서도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의 흔적입니다.” 아테르는 최근 긁힘 자국을 다시 보았다. 더 큰 조각을 빼낸 위치, 파편이 끼어 남은 각도, 슬롯 가장자리 손상 정도. 맞았다. 구조를 모르는 사람이 급히 뜯은 흔적이 아니었다. 이건 적어도 한 번은 이 논리를 이해한 뒤 움직인 손이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먼저 지나간 자는 이 구조를 읽을 수 있는 쪽입니다.” 시온은 그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훔쳐 간 놈이 아니라, 판별을 넘고 더 큰 조각을 정확히 집어간 놈. 그럼 이건 물건을 훔친 문제가 아니다. 누가 이 길을 먼저 읽었느냐의 문제다. 근거리 채널 너머로 서린 목소리가 짧게 들어왔다. “그럼 더더욱 지금 쫓는 게 맞아.” 아테르가 시선을 들었다. “근거는.” “안쪽은 남아 있어도, 먼저 지나간 손은 안 남아.” 서린이 딱 잘라 말했다. “구조는 다시 읽을 수 있어. 사람은 다시 놓치면 끝이야.” 짧은 정적. 시온은 그 말을 듣고 아주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서린 말이 맞았다. 안쪽 반응은 불안정하지만 아직 살아 있다. 그런데 사람은 한 번 더 멀어지면, 이 외곽 성단 쪽에선 그냥 우주에 녹아버린다. 그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쫓자.” 아테르는 더 묻지 않았다. 그 결정은 감정적인 것처럼 보여도, 실제론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지금 그 선택을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쾌하면서도 선명했다. 세른이 곧바로 물었다. “진행 순서는.” 시온은 최근 흔적이 이어진 방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탈한 쪽은 바깥으로 바로 안 빠졌어. 한 번 안쪽 구조물 그림자 쪽으로 몸을 숨겼다가, 거기서 다시 외부 접속띠 쪽으로 틀었어.” 한지우가 곧바로 받았다. “그럼 내가 선체를 조금 더 바깥으로 빼서 회수선 각도 만들게.” “아니.” 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한지우, 넌 선체 유지. 누가 다시 붙으면 우린 돌아올 배가 필요해.” 한지우는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근거리 채널 너머로 아주 짧은 숨 하나만 넘어왔다. 근거리 채널 너머로 서린 목소리가 들어왔다. “누가 선두.” “내가.” 시온이 말했다. “세른은 중간. 아테르는 뒤에서 구조 읽어.” 잠깐 뒤, 서린이 짧게 말했다. “무리하면 내가 먼저 끊는다.” 시온은 앞을 본 채 답했다. “알아.” 짧은 대화가 끝나자, 세 사람은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시온이 먼저 최근 체중 이동 자국을 따라 구조물 바깥쪽으로 몸을 틀었다. 길은 길처럼 나 있지 않았다. 잘린 고리와 끊어진 발판, 외부 정렬부 잔해, 도크 유지용 골조가 반쯤 드러난 좁은 틈. 이건 통로가 아니라, 구조를 아는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연결부였다. 즉, 먼저 지나간 자도 이 길을 읽을 줄 안다는 뜻이었다. 세른이 뒤에서 바로 말했다. “왼쪽 발판, 하중 죽었습니다.” 시온은 말을 듣자마자 발을 틀었다. 바로 다음 순간, 방금 밟으려던 금속판 아래쪽이 조용히 꺼졌다. 낙하라기보다, 버티고 있던 게 스스로 무너진 것 같은 침묵이었다. 근거리 채널 너머로 서린이 숨을 낮췄다. “혼자 왔으면 진작 떨어졌겠다.” “혼자 왔으면 애초에 안 왔지.” “그건 거짓말.” 시온은 대꾸하지 않고 바로 앞을 봤다. 구조물 그림자 안쪽 벽면에, 이번엔 훨씬 선명한 흔적 하나가 남아 있었다. 금속 표면에 손등을 스친 듯한 그을림, 그리고 그 옆으로 아주 짧게 끊긴 섬유 조각. 외투 끝자락이나 장갑 안감이 긁혀 남긴 흔적처럼 보였다. 세른이 손을 뻗어 아주 조심스럽게 그 섬유를 집어 들었다. “새 겁니다.” 아테르가 그걸 보자마자 시선이 가라앉았다. “제국식은 아닙니다.” 시온이 바로 물었다. “동맹 쪽?” 아테르는 확신하지 않았다. “적어도 승인원 규격은 아닙니다. 그리고 항구 인부용도 아닙니다.” 그건 제일 불편한 종류였다. 제국도 아니고, 동맹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닥 잡상인도 아닌 손. 권력 바깥에서 구조를 읽고 먼저 들어온 회색 손. 시온은 섬유 조각보다 그 옆 금속면에 남은 손등 흔적을 더 오래 봤다. “저건 뛰다 긁힌 게 아니야. 멈추며 버틴 자국이야.” 아테르가 조용히 이어받았다. “그렇다면 상대도 여기서 한 번 방향을 읽고 다시 움직였다는 뜻이겠군요.” 시온은 아주 천천히 앞을 가리켰다. “저쪽.” 구조물 바깥 그림자가 끝나는 지점, 외부 접속띠 잔해와 오래된 정렬판이 겹쳐 있는 부분이었다. 누군가 숨었다가, 다시 나가기에 가장 적당한 위치. 이제 독자적인 목표는 분명해졌다. 안쪽 반응을 더 읽는 일도 중요했지만, 지금 더 급한 건 더 큰 조각을 들고 먼저 지나간 손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남은 반응은 약했고, 흔적도 빠르게 죽고 있었다. 그리고 이 현장을 지금 이 자리에서 곧장 읽어 이어갈 수 있는 쪽은 결국 이들뿐이었다. 네 사람이 동시에 숨을 낮췄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앞쪽 어둠 속에서 금속이 아주 얕게 스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아직 멀리 가지 못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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