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중립 항구도시
# 3화. 중립 항구도시
중립 항구도시는 멀리서 보면 언제나 떠 있는 고철 더미 같았다.
수백 개의 접속교와 환승 띠, 오래된 선체를 덧댄 임시 정박층, 규격이 맞지 않는 간판과 도크 번호, 밤에도 잠들지 않는 화물등. 제국도, 동맹도, 경계 세계도 이곳을 자기 언어로 부르려 했지만, 끝까지 자기 걸로 만들진 못했다. 그래서 이곳은 늘 중립이었고, 늘 더러웠다.
수거선이 외곽 정박층에 붙자마자, 선 안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고, 누구도 서로를 다시 보지 않았다. 이 항구에선 그런 식의 예의가 오히려 수상했다.
시온과 서린도 마지막까지 기다리진 않았다.
앞칸 문 너머에서 기록수 이야기를 꺼낸 목소리 둘은, 입항 직전부터 이미 선 상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놓치면 다시 찾기 힘들었다.
철제 램프를 내려오자마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
기름 냄새와 염분, 식지 않은 배기열, 오래된 전선 냄새, 어디선가 타고 있는 향신료 냄새까지 뒤섞여 있었다. 여긴 늘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섞였다. 언어도, 화물도, 사람도, 거짓말도.
서린이 낮게 말했다.
“좋네. 딱 숨기기 좋은 동네다.”
“그래서 다들 여기로 오지.”
“너도?”
시온은 짧게 웃었다.
“나는 떠맡겨서 온 거고.”
“그 말, 네가 제일 안 믿는다.”
시온은 대답 대신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앞서 내린 둘은 이미 군중 사이로 반쯤 섞여 있었다. 완전히 놓친 건 아니었다. 하나는 키가 컸고, 다른 하나는 왼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었다. 기록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쪽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둘 다 그냥 인부처럼 보이진 않았다.
“왼쪽.”
시온이 작게 말했다.
서린은 묻지 않고 곧바로 오른쪽으로 벌어졌다.
이럴 때 둘은 오래된 동업자 같았다. 하나가 길을 보면, 다른 하나는 시야를 나눴다.
외곽 정박층 아래쪽은 정식 표지보다 손으로 덧그은 유도선이 더 많았다. 창고와 창고 사이를 잇는 얇은 통로, 허가받지 않은 연결 계단, 정박증보다 사람 얼굴이 더 잘 통하는 뒷문들. 기록수 하나가 숨어들기엔 최적이었고, 추적자 하나가 섞여들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앞서가던 두 사람 중 다리 저는 쪽이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시온은 바로 고개를 숙여 지나가는 화물 인부 무리에 섞였다. 늦었다면 들켰을 거리였다.
서린이 다른 쪽에서 짧게 혀를 찼다.
“저쪽도 사람 쫓아본 놈들인데.”
“알아.”
“아주 건전한 항구다.”
둘은 정박층 끝에서 다시 합류했다.
앞사람들은 아래층 환승교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길 끝엔 임시 숙소 구역과 싸구려 술집, 창고 겸 전당포들이 몰려 있었다. 기록보다 사람이 먼저 사라지는 구역이었다.
시온은 그 방향을 보며 낮게 말했다.
“기록수면 저쪽으로 숨는 게 맞아.”
“왜.”
“사람 찾는 놈이 제일 먼저 안 가는 구역이라.”
“근데 너는 가잖아.”
“난 개코잖아.”
서린은 피식 웃었다.
“좋아. 공식 직함 나왔다.”
두 사람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철제 계단을 탔다.
발밑 철판이 삐걱거릴 때마다 아래쪽 소음이 더 분명하게 올라왔다. 주사위 굴리는 소리, 누군가 싸우는 소리, 화물 태그를 흥정하는 소리, 다른 언어로 욕하는 소리. 이 도시는 언제나 조금 과열되어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은 걸 집어삼켰다.
계단 중간쯤에서, 시온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서린이 바로 뒤에서 속삭였다.
“왜.”
시온은 아래쪽 광장 끝을 턱으로 가리켰다.
회색 외투를 걸친 두 사람이 아까 그 둘과 짧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손에 든 표식이나 움직임으로 보아 항구 브로커는 아니었다. 너무 깔끔했고, 너무 말이 없었다. 돈 냄새를 맡는 사람들보다는, 이미 지시를 받은 사람들 같았다.
“저건 또 누구야.”
서린의 말에 시온이 낮게 답했다.
“우리만 온 거 아니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짧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왼쪽 다리를 절던 남자가 누군가 손을 뿌리치며 돌아섰고, 회색 외투 쪽 하나가 바로 안쪽 품을 파고들었다. 칼인지, 충격봉인지, 그 중간쯤 되는 빛이 아주 짧게 번뜩였다.
군중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뛴다.”
이번엔 서린이 먼저 움직였다.
시온도 바로 뒤따라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었다.
광장 아래는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화물 상자가 쏟아지고, 술병이 깨지고, 길 비켜라며 욕이 터졌다. 다리 저는 남자는 군중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고, 그를 붙잡으려던 회색 외투 둘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따라붙었다.
시온은 달리면서 그 셋을 동시에 보려 애썼다.
누가 기록수인지, 누가 전달책인지, 누가 추적자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들은 이미 같은 물건을 두고 서로를 쫓고 있었다.**
서린이 오른쪽으로 틀며 외쳤다.
“나는 절뚝이는 쪽 본다!”
“무리하지 마!”
“네가 먼저 하지 마!”
그 와중에도 그 말이 튀어나오자 시온은 짧게 웃을 뻔했다.
웃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이 오히려 정신을 붙들어줬다.
광장 끝, 녹슨 안내탑 아래에서 절뚝이던 남자가 중심을 잃고 한 번 크게 휘청였다.
그 순간 그의 외투 안쪽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은 기록 태그였다.
시온은 방향을 꺾었다.
사람들 발밑으로 차일 뻔한 태그를 거의 미끄러지듯 집어 올리자, 표면에 남은 열 감지가 손끝에 닿았다. 아직 막 떨어진 물건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왔다.
회색 외투 중 하나였다.
시온은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비틀어 옆 골목으로 굴러들었다.
태그를 손에 쥔 채 벽에 등을 붙이자, 회색 외투가 골목 입구를 스치듯 지나갔다. 완전히 놓친 건 아니었다. 다만 군중이 한 번 더 흐트러진 덕에 시야를 잃은 모양이었다.
심장이 아직 거칠게 뛰고 있었다.
서린이 반대편 연결 통로에서 미끄러지듯 합류했다.
“살았어?”
“간신히.”
“절뚝이는 놈은 놓쳤어.”
“대신 이건 잡았지.”
시온이 손을 펴 보였다.
기록 태그는 값싼 외곽 물류용처럼 보였지만, 한쪽 면에 그을린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태그 식별면 일부도 긁혀 있었고, 가장자리엔 아주 희미하게 같은 문장 부호가 새겨져 있었다.
서린이 숨을 고르며 태그를 들여다봤다.
“읽혀?”
“겉면은 막혔어.”
“좋네. 오늘 뭐 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
시온은 태그를 뒤집다가, 반대면 모서리에 아주 작게 눌린 홈 하나를 발견했다.
공장식 잠금이 아니라, 누가 개인적으로 한 번 더 봉인을 건 흔적 같았다.
그는 손톱 끝으로 그 홈을 눌렀다.
태그 표면이 아주 짧게 흔들리더니, 희미한 투사문 하나가 떴다.
완전한 문장은 아니었다.
도착지 코드 일부, 환승 시간대 일부, 그리고 단 한 줄의 짧은 표시.
**기록수 생존 확인 전까지 전달 보류**
둘 다 동시에 숨을 멈췄다.
서린이 먼저 낮게 욕했다.
“미친.”
시온은 투사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살아 있네.”
“아직은.”
“응. 아직은.”
짧은 푸른 글씨가 허공에서 일그러지다가 사라졌다.
태그는 다시 죽은 물건처럼 손 안에 식어갔다.
하지만 이미 충분했다.
기록수는 죽은 게 아니었다.
최소한 이 항구에선, 아직 살아 있는 쪽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생존을 확인하기 전까지 뭔가를 넘기지 않고 있었다.
서린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우린 지금 뭐 쫓는 거야. 기록수야, 전달물이야.”
시온은 태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이건 사람 하나의 생사만 확인하는 추적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살려 확인해야만 다음 전달이 이어지는 구조, 즉 물건과 사람과 순서가 같은 선 위에 묶여 있다는 뜻이었다.
“둘 다.”
“일 커졌네.”
“원래 여기서부터 커지는 거지.”
골목 바깥에선 아직도 소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절뚝이는 남자를 찾고 있었고, 누군가는 방금 떨어진 물건을 찾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자기 선만 끊고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온은 골목 밖 회색빛 군중을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숨을 뱉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광장 반대편 상층 연결교 위로 지나가는 검은 외투 몇 벌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항구 인부도, 브로커도, 민간 경비도 아닌 걸음이었다.
너무 정돈돼 있었고,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한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서린도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저건 또 뭐야.”
시온은 그쪽을 잠깐 보다가 태그를 다시 쥐었다.
“더 귀찮은 냄새.”
중립 항구도시의 소음 한가운데서,
시온은 처음으로 확신했다.
이건 이제 관리국 안에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도시엔, 그가 아직 얼굴도 모르는 다른 손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