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그녀가 숨기던 숨
# 39화. 그녀가 숨기던 숨
하룬이 이끈 길은 바깥층 시장이나 안쪽 작업장과도 결이 달랐다.
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사람 수는 줄었고, 대신 각 구획의 침묵이 더 분명해졌다. 바깥층에선 못 본 척하는 눈이 먼저였다면, 이 안쪽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규율이 먼저였다. 지나가는 손들이 이쪽을 안 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안 봐야 한다는 걸 몸에 익힌 움직임. 그게 오히려 더 숨 막혔다.
나심은 여전히 앞에서 웃는 얼굴로 걸었지만, 지금은 말수가 줄어 있었다. 하룬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그 등 하나만으로도 어디까지 따라와야 하는지 정해지는 종류의 압력이 있었다.
루하이는 중간쯤부터 아예 입을 다물었다. 겁먹어서라기보다, 이 안쪽에선 입보다 눈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걸 너무 빨리 배운 아이처럼. 그래도 완전히 얌전해진 건 아니었다. 시온은 몇 번이나 루하이 시선이 벽면 표식과 잠긴 통, 드나드는 사람 손을 빠르게 훑는 걸 봤다. 이 애는 숨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외우고 있었다.
아테르는 지나치는 구조를 아주 짧게만 읽고 지나갔다. 시장이나 작업장에선 흔적을 보던 사람이었는데, 이 안쪽에선 오히려 너무 많이 보지 않으려는 듯했다. 어떤 장소는 읽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먼저 눈치채는 법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만지지 않으려 애썼다. `하즈란`, `아카`. 이제 저 두 단어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안쪽까지 들어왔는지를 재는 척도처럼 느껴졌다. 이름 하나를 찾으러 왔는데, 그 이름을 둘러싼 값과 손과 규율 안쪽으로 먼저 끌려 들어온 셈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침묵들 사이에서, 서린이 아주 잠깐만 걸음을 늦췄다.
누가 보기엔 그냥 발을 고쳐 디딘 정도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온은 바로 알았다. 서린은 지금 멈춘 게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 한 번 숨을 고른 거였다. 오른손 손가락이 아주 잠깐만 접혔다 펴졌고, 턱선이 미세하게 굳었다가 다시 풀렸다.
그건 두 문장으로도 충분한 종류의 피로였다.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무너지진 않겠다고 이미 정리한 사람의 숨.
시온은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순간의 서린은 위로보다 못 본 척이 더 맞았다.
서린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속도를 맞췄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앞에서 냄새 바뀐다.”
카엘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조금 들었다.
“물 냄새.”
그가 짧게 말했다.
“그리고 약.”
나심이 앞에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던졌다.
“냄새는 잘 맡네.”
시온도 그제야 느꼈다.
금속과 기름, 열기와 먼지 냄새 아래로 다른 결이 섞이기 시작했다. 오래 데운 물 냄새, 희미한 소독 약재 냄새, 그리고 천이 자주 갈린 공간에서 나는 건조한 냄새. 작업장이나 창고가 아니라, 누군가를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에서 나는 냄새였다.
통로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꺾였을 때, 안쪽 구획이 드러났다.
높게 세운 폐선체 외벽과 겹겹의 천막으로 가린 폐쇄 구역이었다. 완전히 화려하진 않았다. 하즈란답게 여전히 거칠고 실용적이었고, 재봉선이 드러난 천과 덧댄 금속판이 그대로 보였다. 근데 바깥층과 안쪽 작업장보다 확실히 다른 게 있었다. 여기선 버티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숨기고 보호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시온은 첫눈에 알아차렸다.
이곳은 물건만 묶어 두는 곳이 아니었다.
하룬이 걸음을 멈췄다.
문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대신 문처럼 지켜지는 입구 앞이었다. 양옆엔 노골적인 경비 대신, 일을 하는 척하며 손을 멈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안 보는 척하고 있지만, 실은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가는지 전부 기록하고 있는 눈들.
나심이 뒤를 돌아봤다.
“좋아.”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입보다 표정이 더 값 비싸.”
루하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넌 이미 파산했네.”
카엘이 바로 팔꿈치로 아이 옆구리를 툭 쳤다.
“조용.”
근데 이번엔 나심도 웃음을 참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더 풀어주진 않았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긴장을 조금만 흩뜨린 뒤, 다시 더 조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룬이 안쪽을 향해 아주 짧게 신호를 보냈다.
안쪽 천이 걷히고, 먼저 나온 건 사람이 아니라 시선이었다.
작업장 사람들의 눈과는 달랐다. 계산하고 경계하는 건 같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하는 쪽에 가까운 눈. 들어오는 이들이 누군지보다, 무엇을 들고 왔고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먼저 보는 눈이었다.
시온은 그 시선을 느끼는 순간, 재킷 안쪽 종이가 갑자기 더 무거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카`
이름 하나가 드디어 실재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안쪽 천막 그림자 아래엔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나이가 많진 않았지만, 이 구역 안에선 오래 버틴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장식보다 실용이 먼저인 옷차림, 누가 다쳤는지부터 먼저 보는 눈, 근데 동시에 누가 선을 넘을지 먼저 재는 입술. 시온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그냥 시중드는 손이 아니다. 안쪽 사람들을 정리하고, 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조절하는 손이다.
나히라였다.
나심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밖에서 좀 시끄러웠어.”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덕분에 재미있는 걸 몇 개 같이 들어왔지.”
나히라는 그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시온 일행과 루하이를 한 번에 쓸어보고, 마지막으로 루하이 손 안 에테라이트 조각에 시선을 잠깐 멈췄다. 그 다음엔 카엘 품 안쪽과, 시온 재킷 선 쪽까지. 너무 대놓고 보진 않았는데, 그래서 더 많이 본 사람의 눈이었다.
“이 안으로 다?”
그녀가 낮게 물었다.
하룬이 짧게 답했다.
“다.”
나히라는 아주 짧게 숨을 뱉었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이 정도면 결국 안쪽까지 올 줄 알았다는 체념 쪽에 가까운 숨이었다.
“좋아.”
그녀가 말했다.
“그럼 적어도 더 밖에서 떠들진 않겠네.”
서린이 그 말을 듣고 아주 낮게 물었다.
“안쪽은 덜 시끄러운가.”
나히라는 처음으로 서린을 제대로 봤다.
“겉으론.”
그녀가 답했다.
짧은 문장이었는데, 시온은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는 걸 느꼈다. 이 안쪽은 바깥보다 조용하지만, 그게 평화롭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너무 쉽게 인정하는 목소리였다.
나심이 가볍게 덧붙였다.
“에테라이트, 이름 하나, 장부 보는 애 하나.”
그가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제법 두껍지?”
나히라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그 이름은 여기서도 함부로 말하지 마.”
그녀가 낮게 말했다.
루하이가 중얼거렸다.
“다들 그 말만 하네.”
이번엔 아무도 받아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더 선명했다. 이 안쪽에서도 아카는 그냥 사람 이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시온은 그걸 듣는 순간, 아카가 바깥층에서 소문으로만 떠도는 존재가 아니라, 안쪽에서 직접 관리되고 있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걸 느꼈다.
나히라가 몸을 비켰다.
“들어와.”
그녀가 말했다.
“근데 들어오면, 이제 너희가 묻는 순서대로는 안 굴러가.”
시온은 그 말이 거의 경고처럼 들렸다.
질문하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 안쪽 질서 안으로 분류되러 들어가는 것.
하룬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고, 나심이 뒤를 따랐다. 루하이는 잠깐 버티려다 카엘이 아주 미세하게 손을 당기자 결국 걸음을 옮겼다. 아테르는 조용히 안쪽 구조를 한 번 더 눈에 담았고, 서린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가장 먼저 선을 넘었다.
시온은 그 뒤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다음에 보게 될 건,
시장도,
창고도,
바깥층의 값싸고 시끄러운 소란도 아닐 거였다.
아마,
이름 하나가 어떻게 사람이 아니라 값처럼 관리되는지,
그리고 왜 엘리아가 아무 설명 없이 `하즈란`과 `아카` 두 단어만 남겼는지,
조금은 더 가까이 보게 될 것이다.
그 안쪽 어디엔가,
아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