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값이 달리는 곳
# 38화. 값이 달리는 곳
하룬과 나심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안, 시장 바깥층의 공기는 조금씩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겉으로 보기엔 천막과 골조 사이를 잇는 평범한 통로였는데, 몇 번 꺾고 나자 소리가 먼저 달라졌다. 바깥에선 시끄러움이 겹쳐 하나의 시장처럼 들렸다면, 안쪽은 오히려 소음이 잘게 잘려 있었다. 망치질 소리, 쇳가루를 털어내는 소리, 짧은 흥정, 물통 뚜껑을 닫는 소리, 먼 데서 한 번씩 터지는 웃음. 전부 들리긴 하는데, 서로 뒤엉키지 않았다.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가 이미 정리된 장소 같았다.
시온은 그 차이가 더 불편했다.
바깥층의 소란은 적어도 살아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근데 이 안쪽은 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질서는 대개 누가 무엇을 얼마나 쥘 수 있는지가 이미 정해져 있을 때 생긴다.
나심은 여전히 앞에서 웃는 얼굴로 걸었고, 하룬은 말없이 길만 열었다. 루하이는 여전히 카엘 손에 반쯤 붙잡힌 상태였는데, 완전히 질질 끌려가지는 않았다. 도망칠 각을 보는 대신, 이제는 안쪽 구조를 외우려는 눈이었다. 이런 애들은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빨리 기억한다는 걸 시온은 알고 있었다.
아테르는 지나치는 골조와 벽면을 힐끗 보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
“창고입니다.”
시온이 작게 물었다.
“시장 안쪽이 아니라?”
“둘 다요.”
아테르가 답했다.
“근데 바깥처럼 누구나 흥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모으고, 가르고, 보류하는 쪽이 더 강합니다.”
카엘이 짧게 말했다.
“값이 정해지기 전까지 잠깐 묶어 두는 데지.”
하룬이 그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속도로 한 번만 걸음을 늦췄다. 짧은 반응이었지만, 시온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카엘이 이 바닥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하룬도 읽고 있다는 뜻이었다.
통로 끝에 닿았을 때 처음 보인 건 열린 광장이 아니었다.
반쯤 지붕을 덮은 넓은 작업장이었다. 폐선체 골조를 이어 만든 천장 아래로 긴 탁자와 낮은 적재대, 반쯤 분해된 장치, 봉인된 통, 금속 상자가 층층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분명 많이 있었는데, 바깥 시장처럼 소리치지 않았다. 각자 맡은 걸 옮기고, 닦고, 재고, 잠깐씩만 말하고, 다시 손으로 돌아갔다. 여기선 목소리보다 손이 먼저 일하는 것 같았다.
시온은 곧장 몇 가지를 알아차렸다.
첫째, 에테라이트 같은 귀한 물질이 굴러다니는 곳이라면 오히려 이런 안쪽이 더 맞았다.
둘째, 아카라는 이름이 밖에서 삼켜진 이유도 조금은 이해됐다. 이런 구조 안에 묶인 이름이라면, 바깥층에서 함부로 입에 올리는 순간 누가 듣든 바로 안쪽 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셋째, 루하이는 이 안쪽 구조를 보자마자 겁먹는 대신 더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이런 애는 무서울수록 더 훔칠 각을 본다.
나심이 아주 느리게 돌아섰다.
“좋아.”
그가 말했다.
“이제 바깥 공기 다 털었으니, 여기선 사람처럼 말해 보자.”
서린이 받아쳤다.
“사람처럼 말할 생각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밖에서 그렇게 끌고 들어오진 않았겠지.”
나심은 웃었다.
“밖에선 귀가 너무 많아서.”
그가 말했다.
“여긴 적어도 값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는 내가 먼저 보거든.”
“그래서 네가 먼저 듣고 싶은 게 뭐지.”
시온이 물었다.
나심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시온과 카엘, 루하이, 그리고 아테르 손의 장비를 차례로 봤다.
“순서대로?”
그가 말했다.
“왜 에테라이트가 필요한지. 왜 아카 이름을 알고 왔는지. 그리고 저 아이가 왜 하필 오늘 진짜를 집고 달아났는지.”
루하이가 바로 끼어들었다.
“그건 내가 설명 안 해도 되지 않나.”
“아니.”
하룬이 잘랐다.
“넌 제일 먼저 해야 해.”
루하이는 입을 다물었다. 아까까지는 입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하룬 앞에선 말을 더 얹는 순간 진짜로 잘릴 수 있다는 걸 이미 몸이 아는 표정이었다.
서린이 먼저 시온 쪽을 한 번 봤다.
시온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하지만 전부를 먼저 내놓을 필요도 없다. 필요한 만큼만, 대신 거짓 없이. 그게 지금 가장 덜 약해 보이는 방식이었다.
시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배가 죽기 직전이야.”
그가 말했다.
“불시착하면서 축이 거의 나갔고, 가짜 에테라이트 붙이면 더 빨리 끝나.”
나심이 물었다.
“배는 어디 있지.”
“그건 나중 얘기지.”
서린이 잘랐다.
나심은 그 말을 굳이 밀지 않았다. 대신 웃는 얼굴로 고개만 한 번 기울였다. 이 사람은 바로 강요하는 타입이 아니라, 어디까지는 지금 안 밀어도 결국 나중에 말하게 될 거라는 걸 아는 타입이었다.
아테르가 조용히 덧붙였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찾았습니다.”
하룬이 그 말을 받았다.
“아카.”
짧은 정적.
“그래.”
시온이 말했다.
“그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있었어.”
나심이 웃음을 아주 조금 줄였다.
“남긴 사람?”
그가 물었다.
“파는 사람이 아니라.”
“그건 너희가 먼저 더 말해 줘야 알지.”
서린이 답했다.
하룬은 그 공방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처음으로 루하이 쪽을 제대로 봤다.
“넌.”
루하이는 잠깐 눈을 피했다가, 다시 들었다. 피한다고 안 보이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아는 식이었다.
“그냥 집었어.”
그가 말했다.
하룬이 한 걸음 다가왔다.
“거짓말.”
루하이는 입술 안쪽을 짧게 씹었다. 시온은 그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완전히 들킨 게 아니라, 적당히 줄일 말을 찾는 중이었다.
“완전히 그냥은 아니고.”
루하이가 마지못해 말했다.
“가짜들 사이에 너무 죽은 척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하룬이 물었다.
루하이는 잠깐 침묵했다가, 더 낮게 말했다.
“그리고 오늘은 안쪽에서 물건 빠지는 선이 좀 이상했어.”
시온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건 중요했다. 단순 절도 미수보다 더 안쪽 정보였다. 루하이는 물건을 훔치려다 걸린 애가 아니라, 안쪽 흐름 자체를 기웃거리던 애였다.
나심도 그걸 알아들은 듯했다.
“그걸 누가 가르쳤지?”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아무도.”
루하이가 바로 답했다.
“그냥 장부 보면 티 나.”
골목 안 공기가 잠깐 멎었다.
이번엔 시온만 느낀 게 아니었다. 아테르도, 카엘도, 서린도, 나심도, 하룬도. `장부`라는 말이 그냥 좀도둑의 변명과는 다른 결로 떨어졌다는 걸 모두가 느꼈다.
나심이 아주 천천히 웃었다.
“아.”
그가 말했다.
“너 그런 애였구나.”
루하이는 그 말이 반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자기 값을 너무 빨리 들킨 쪽에 가까웠다.
시온은 그 순간 퍼즐이 한 칸 더 맞는 걸 느꼈다.
루하이는 단순히 손이 빠른 애가 아니다.
기록과 흐름을 읽고,
가짜 사이에서 안 죽은 걸 골라내고,
장부 선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날을 본다.
그건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조용히 위험한 능력일 수도 있었다.
하룬이 아주 낮게 말했다.
“그래서 안쪽 물건에 손댔군.”
루하이는 이번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나심이 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계산이 좀 달라지네.”
그가 말했다.
“외지인들은 에테라이트가 필요하고, 아카 이름을 들고 왔고. 이 애는 장부를 본다.”
그 정리가 끝나자마자, 시온은 이 사람들이 이미 자기들을 따로따로 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이제는 하나의 묶음이었다.
문제와 값과 가능성이 한데 섞인 묶음.
바깥층에선 우연처럼 보였던 게, 안쪽으로 들어오자 전부 한 줄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린이 낮게 물었다.
“그래서.”
나심은 이번엔 하룬보다 먼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짧게 옆을 봤다. 그 시선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었다.
하룬이 말했다.
“데리고 간다.”
짧은 정적.
루하이가 바로 반응했다.
“어디로.”
하룬은 그를 보지도 않았다.
“입 닫고 가면, 덜 귀찮은 데.”
“그건 하나도 안 안심되는데.”
루하이가 중얼거렸다.
카엘이 아주 낮게 말했다.
“조용히 좀 해.”
시온은 그 말과 함께 안쪽 더 깊은 곳을 봤다.
작업장 뒤편엔 천막과 골조로 가려진 또 다른 구획이 있었다. 바깥층보다 더 조용하고, 사람도 적고, 대신 거기 드나드는 손들은 전부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 구역. 에테라이트와 아카, 루하이의 장부,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끌려 들어갈 만한 곳이 있다면 저기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쪽 어딘가엔,
정말로 이 바닥 판을 쥔 사람이 있을 거였다.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한 번 더 눌렀다.
`하즈란`
`아카`
두 단어는 아직도 설명이 없었다.
근데 이제는 하나는 분명했다.
이 이름을 찾는 길은,
결국 값이 달리는 곳 한가운데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