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값이 갈라지는 방식
# 42화. 값이 갈라지는 방식
분리한다는 말이 떨어진 뒤, 안쪽 공기는 오히려 더 조용해졌다.
시온은 그 짧은 침묵이 단순한 대기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누군가 결정했으니 다들 따르기 위해 조용해진 게 아니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누구 손에 둘지, 무엇을 어느 거리만큼 떼어 놓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가 가장 먼저 값을 잘못 치를지 전부 다시 계산해야 하는 침묵이었다.
하룬은 여전히 입구 쪽에 가까이 서 있었고, 나심은 웃는 얼굴로도 안쪽 사람들 손 움직임을 더 자주 보고 있었다. 나히라는 아카를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실은 아카 말 이후 안쪽 공기 전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가장 먼저 붙들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루하이는 처음으로 자기 손 안 에테라이트를 조금 덜 세게 쥐었다. 아까까진 이걸 뺏기면 끝이라는 표정이었는데, 이제는 단순 절도품이 아니라 너무 큰 판 안에 들어와 버렸다는 걸 안 얼굴이었다. 카엘은 그 변화를 읽고도 완전히 손을 풀지 않았다. 도망은 못 가게, 그렇다고 쓸데없이 더 거칠게 잡지도 않게. 불편할 만큼만 묶는 손이었다.
시온은 문득 한지우를 떠올렸다.
이 사막 안쪽에서 문 흉내와 진짜 조각과 이름의 값이 갈리는 동안, 바깥 불시착 지점에 남아 있는 배는 여전히 죽기 직전일 거였다. 에테라이트를 찾으러 들어왔는데, 이제는 그 에테라이트 하나도 그냥 사서 들고 나갈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이름을 찾는 일과 배를 살리는 일이 더 세게 한 줄로 묶여 버린 셈이었다.
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나눌 건데.”
하룬이 짧게 답했다.
“조각은 저쪽.”
그는 카엘 품 안쪽을 턱짓했다.
“에테라이트는 여기.”
이번엔 루하이 손을 가리켰다.
“얘기는 따로.”
그 말은 결국 사람도 나누겠다는 뜻이었다.
시온은 바로 물었다.
“누굴 떼놓을 생각이지.”
나심이 부드럽게 웃었다.
“질문은 좋네.”
그가 말했다.
“근데 하즈란에선 늘 물건부터 자르고, 사람은 나중에 따라와.”
“우린 물건 아니야.”
시온이 낮게 말했다.
“그건 네 쪽 말이고.”
나심이 답했다.
“이 안쪽에선 아직 전부 값이지.”
그 문장은 불쾌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안쪽 질서 안에서는.
아테르가 조용히 말했다.
“아카가 말한 건 공진에 가깝습니다. 둘을 떨어뜨려 둬야 다음 판정이 가능하다는 뜻이라면, 최소한 같은 공간 안에 계속 두면 안 됩니다.”
하룬이 그 말을 받았다.
“그래서 자른다.”
서린은 더 낮게 말했다.
“그걸 자르는 손을 우리가 못 믿겠다는 거지.”
나심은 바로 웃었다.
“좋아. 이제야 대화가 되네.”
이번엔 그 `좋아`가 나심 입에서 어색하게 들리진 않았다. 날카롭게 받아치는 말투라기보다, 계산이 맞아들어갈 때 드는 얕은 만족에 가까웠다.
나히라가 그 사이를 조용히 잘랐다.
“둘 다 같은 방에 두지 마.”
그녀가 말했다.
“아카 말은 그거였어. 여기서 더 오래 울리게 두면, 저 애도 못 보고 너희도 못 봐.”
시온은 그녀가 `저 애`라고 했을 때 잠깐 멈췄다.
아카를 이름보다 그렇게 부르는 건, 낮춰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쪽 사람이 아카를 다루는 방식 같았다. 이름을 바깥에 흘리지 않으면서도, 안쪽에선 이미 자기들 나름의 거리로 불러 온 방식.
루하이가 처음으로 불만보다 진짜 경계를 담아 물었다.
“그럼 이거 뺏어가는 거야?”
하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심이 그 말을 가볍게 받았다.
“뺏는 것보다 덜 예쁜 말로 하자면, 잠깐 맡긴다고 할 수도 있지.”
“그게 더 수상하거든.”
루하이가 바로 말했다.
나심은 웃었다.
“네 입은 진짜 아깝다.”
카엘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나도 방금 그 생각했어.”
루하이가 그 말을 듣고 흘끗 그를 봤다. 짜증이 먼저인 얼굴인데도, 아까보다 덜 적대적이었다. 자길 제일 먼저 막은 손인데도, 그 막는 방식이 완전히 팔아넘기는 쪽은 아니라는 걸 감각적으로 읽은 모양이었다.
시온은 그 변화를 보고 카엘이 왜 루하이한테 먼저 몸을 던졌는지 다시 생각했다. 단순한 동정이라기보다, 자기랑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걸지도 모른다. 혼자 오래 빠져나오려다 손부터 먼저 쓰게 된 애의 냄새. 아직 그걸 말로 풀 단계는 아니었지만, 장면 속에선 분명히 남고 있었다.
하룬이 아주 짧게 손짓하자, 안쪽 사람 둘이 조용히 움직였다. 하나는 루하이 쪽으로, 하나는 카엘 쪽으로 붙었다. 노골적으로 무기를 겨누는 건 아니었지만, 이 이상 자기 의지만으로는 거리를 정할 수 없다는 걸 알리기엔 충분한 위치였다.
서린이 그걸 보며 물었다.
“우릴 갈라놓겠다는 거네.”
“잠깐.”
하룬이 말했다.
“필요한 만큼.”
“그 말 제일 안 믿겨.”
시온이 중얼거렸다.
나심이 웃었다.
“신뢰는 비싼 거라 했잖아.”
그 말은 여전히 얄미웠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이 장소 전체의 법칙처럼 들렸다. 하즈란에선 진짜가 귀하고, 값이 붙고, 거짓이 많고, 신뢰는 제일 늦게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 이 과정도, 이 바닥 방식대로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 있었다.
나히라는 아카를 향해 한 번만 시선을 보냈다.
“괜찮아?”
그녀가 낮게 물었다.
아카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온 일행과 루하이, 에테라이트, 카엘 품 안 조각까지 다시 한 번 눈으로 더듬었다. 그건 불안해하는 아이의 눈이 아니라, 아직 다 정리되지 않은 결을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저건 멀리 둬.”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리고 저건 가까이 있으면 안 돼.”
이번엔 루하이와 카엘이 거의 동시에 자기 쪽이 지목된 걸 알아챘다. 시온은 그 짧은 엇갈림만으로도, 아카가 지금 감각으로 공간 자체를 다시 짜고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먼저 잘라야 할 걸 자르는 방식.
아테르가 낮게 말했다.
“그럼 순서가 필요합니다.”
시온도 곧장 따라갔다.
“누가 뭘 먼저 들고 움직이고, 누가 남고, 누가 보는지.”
나심은 그걸 듣고 흥미롭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제야 좀 판처럼 들리네.”
그가 말했다.
서린이 바로 잘랐다.
“판은 아직 안 깔렸어.”
“그건 곧 알게 되겠지.”
나심이 대꾸했다.
그때, 안쪽 더 깊은 구획에서 낮고 묵직한 금속음이 한 번 울렸다. 누가 일부러 낸 소리 같진 않았다. 오히려 오래 잠겨 있던 구획 하나가 열리거나, 반대로 닫히는 소리에 가까웠다. 근데 그 짧은 소리 하나만으로도 안쪽 사람들 손이 전부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시온은 그 변화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안쪽에도 더 안쪽이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닿은 곳은 끝이 아니라, 진짜 판 직전의 분류 구역에 더 가깝다.
루하이도 그걸 느꼈는지, 이번엔 진짜로 작게 침을 삼켰다.
“와.”
그가 중얼거렸다.
“진짜로 큰 데 잘못 건드렸네.”
카엘이 아주 낮게 답했다.
“이제 알았냐.”
루하이는 짜증 섞인 얼굴로 그를 봤지만, 반박하진 못했다.
하룬이 마지막으로 정리하듯 말했다.
“준비해.”
그 한마디에 안쪽 공기가 다시 움직였다. 사람들은 뛰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대신 각자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는 손처럼 흩어졌다. 분리도, 이송도, 감시도, 전부 이 안쪽에선 일상처럼 굴러가는 모양이었다.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한 번 더 눌렀다.
`하즈란`
`아카`
이제 그 두 단어는 목적지가 아니라,
값이 갈라지고,
다시 묶이고,
더 깊은 판으로 내려가는 계단 첫 칸처럼 느껴졌다.
다음은 아마,
누가 어디까지 진짜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가 이 안쪽에서 실제로 판을 쥐고 있는지,
더 선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