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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거짓이 오래 못 버티는 자리

# 43화. 거짓이 오래 못 버티는 자리 안쪽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시온은 처음으로 이 공간 전체가 단순한 거처나 창고가 아니라 하나의 전실처럼 느껴졌다. 바깥층 시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과, 더 깊은 판으로 넘어가는 것 사이. 값이 갈리고, 물건과 사람과 말이 따로 떼어졌다가, 다시 누구 손 아래 놓일지 정리되는 중간 구역. 하룬은 여전히 짧게만 지시했고, 안쪽 사람들은 그보다 더 짧게 움직였다. 질문도 없고 군말도 없었다. 물통 하나 옮기는 손과 사람 하나 떼어 놓는 손이 비슷한 리듬으로 굴러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불쾌했다. 여기선 분리가 처벌이 아니라 일상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카엘 쪽에는 검은 천을 걸친 둘이 붙었고, 루하이 쪽에도 다른 둘이 붙었다. 노골적으로 묶거나 밀진 않았지만, 누가 어느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는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시온과 서린, 아테르는 아직 같이 서 있었지만, 그건 신뢰 때문이라기보다 아직 어떤 순서로 자를지 마지막 판정이 안 났기 때문처럼 느껴졌다. 루하이는 아까보다 더 조용해졌는데, 이상하게도 그게 완전한 체념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에서 너무 빨리 계산이 돌아가서 입이 못 따라오는 순간에 가까웠다. 이런 애는 조용할 때가 더 수상하다. 카엘은 반대로 더 적게 움직였다. 품 안 조각을 더 깊게 끌어안은 채, 누가 자기 쪽으로 얼마나 붙어 있는지만 몸으로 기억하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시온은 그 자세를 보고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붙잡힌다고 바로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정말 잘라야 하는 순간까지 힘을 남겨 두는 타입이다. 나심은 그 둘을 번갈아 보다가 아주 느리게 말했다. “좋아.”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다들 조금씩 자기 값이 어디쯤인지 알겠지.” 서린이 곧장 잘랐다. “너만 신났네.” 나심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신나는 건 아니고.” 그가 말했다. “이쯤 되면 누가 뭘 들고 들어왔는지는 좀 선명해지잖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시온 일행은 에테라이트가 필요했다. 아카는 그 필요보다 더 깊은 판정을 가지고 있었다. 루하이는 안쪽 흐름과 장부를 건드리는 애였다. 카엘 조각은 아직 다 읽히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카가 `문이 아니다`라고 잘라낸 대상과 깊게 연결돼 있었다. 이제부터는 이걸 각각 따로 떼어 보는 단계였다. 나히라가 아카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저 애는 조금 쉬게 해야 해.” 하룬이 짧게 물었다. “지금?” “지금.” 나히라가 답했다. “방금도 이미 너무 많이 봤어.” 시온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카는 설명으로 힘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구분으로 힘을 쓰는 쪽이다. 그러니까 진짜와 가짜, 흉내와 잔향, 살려 둘 것과 잘라낼 것을 한 번에 오래 보면 오히려 먼저 닫혀 버릴 수 있다. 아카는 그 대화를 듣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반박도, 동의도 없이 그냥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애의 조용함은 아니었다. 자기 말이 어떤 값을 흔들었는지, 그리고 이제 누가 어떤 손으로 자기를 다시 다룰지 이미 읽고 있는 아이의 조용함에 가까웠다. 나심이 이번엔 시온 일행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면 남는 건 너희 셋이네.” 그가 말했다. “에테라이트가 왜 필요한지, 아카 이름을 누가 남겼는지,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 빠졌어.” 서린이 낮게 말했다. “우리가 왜 네 바닥 규칙까지 받아줘야 하는지.” 나심은 웃었다. “그건 쉬워.” 그가 말했다. “이미 안쪽까지 들어왔으니까.” 시온은 그 문장이 이상할 만큼 차갑게 정확하다고 느꼈다. 바깥층에서라면 아직 흥정도, 튀는 것도, 속이는 것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이미 안쪽 규율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여기서부터는 원하지 않아도 상대 순서대로 잘리고, 묶이고, 값이 매겨진다. 아테르가 낮게 말했다. “우릴 어디로 데려갈 생각입니까.” 나심이 곧바로 답하진 않았다. 대신 하룬과 아주 짧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 짧은 교환만으로도 시온은 알 수 있었다. 최종 판단은 아직 한 단계 더 위에 있다는 걸. “거짓이 오래 못 버티는 자리.” 나심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 정도면 그렇게 설명해도 되겠네.” 루하이가 그 말을 듣고 작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거 하나도 좋은 데 같지 않은데.” “맞아.” 카엘이 아주 낮게 말했다. “좋은 데 아닐 거다.” 그 둘이 이상하게 같은 쪽 감각으로 말하는 바람에, 시온은 잠깐 숨을 고를 뻔했다. 아직 완전히 붙은 것도 아닌데, 이런 순간마다 둘 사이에 어설픈 공모 같은 결이 생기는 게 묘하게 잘 맞았다. 그때, 안쪽 더 깊은 구획에서 다시 금속음이 울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더 분명했다. 뭔가가 열리는 소리였다. 오래 잠겨 있던 구조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익숙하게 여닫히는 장소의 소리. 그리고 그 소리 하나에 맞춰 주변 손들이 전부 아주 미세하게 정렬됐다. 나심도 웃음을 조금만 줄였고, 하룬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얼굴이 됐다. 나히라는 아카 쪽 천막을 다시 한 번 정리했고, 안쪽에 서 있던 사람 둘이 조용히 시온 일행 쪽으로 붙었다. 시온은 숨을 얕게 골랐다. 왔다. 여기서 더 깊은 데로 넘어가는 문턱. 하룬이 짧게 말했다. “간다.” 이번엔 누구도 되묻지 않았다. 루하이조차 입을 다물었고, 카엘은 조각을 안은 팔만 더 단단히 붙였다. 서린은 턱을 아주 조금만 들었고, 아테르는 눈빛이 더 차갑게 정리됐다.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누른 채, 자기 심장이 이상하게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겁이 없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게 같이 걸려 있어서, 이제는 떨릴 여유가 없는 쪽에 가까웠다. 통로는 더 좁아졌다. 바깥층 시장에서 느꼈던 열과 먼지 냄새는 오히려 옅어지고, 오래 닦인 금속 냄새와 물기 없는 천 냄새가 더 가까워졌다. 사람들이 적은 대신, 각자가 서 있는 위치는 더 의도적이었다. 누가 이쪽을 쳐다보는지보다, 누가 이쪽을 쳐다보지 않기로 했는지가 더 선명한 공간. 시온은 그 안쪽을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하즈란은 무법지대가 아니라, 법 대신 값을 끝까지 밀어붙인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런 곳에선, 거짓도 오래 버티려면 값이 있어야 한다. 문인 척하는 것조차. 통로 끝, 마지막 천막 그림자 아래에서 하룬이 멈췄다. 그 뒤엔 아직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근데 그 보이지 않음 자체가 이미 압력이었다. 마치 안쪽 사람이 굳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여기까지 끌려온 것들 값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나심이 아주 낮게 말했다. “좋아.”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숨기는 쪽이 손해다.” 시온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부정도 못 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 누구도 이전처럼 거짓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순 없을 거였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드디어 판을 쥔 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응원은 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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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