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
# 44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
마지막 천막 그림자 아래를 지나자, 안쪽 공간은 예상보다 넓었다.
화려하진 않았다. 오히려 하즈란 전체가 그렇듯, 버려진 것과 남겨 둔 것을 이어 붙여 겨우 형태를 세운 장소에 가까웠다. 반쯤 뜯긴 폐선체 외벽이 방처럼 세워져 있었고, 천장엔 오래된 적재링과 천막 천이 겹겹이 드리워져 있었다. 바닥은 쇳가루와 모래를 그대로 두지 않으려고 얇은 금속판을 깔아 고른 흔적이 있었고, 안쪽 공기엔 열과 약재, 물 냄새 아래로 아주 희미한 금속 기름 냄새가 길게 깔려 있었다.
근데 이 공간은 바깥층이나 작업장과 다른 종류의 힘을 갖고 있었다.
시온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긴 무언가를 숨기는 곳이 아니라,
무엇을 누구 손 아래 둘지 결정하는 곳이었다.
사람 수는 적었다. 대신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 특유의 정리가 있었다. 장식 대신 배치가 권력이었고, 소리 대신 멈춤이 규칙이었다. 누가 먼저 말하는지보다, 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움직이는지가 더 중요한 장소.
하룬은 끝까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고, 나심은 그보다 반 걸음 늦게 따라 들어가며 웃음을 거의 지웠다. 루하이는 눈을 굴리다가도 이 안쪽에선 너무 노골적으로 두리번거리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 시선을 더 자주 내렸다. 카엘은 품 안 조각을 더 깊게 끌어안았고, 서린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아테르는 여기선 흔적보다 구조를 읽는 쪽으로 신경을 옮긴 얼굴이었다.
그리고 안쪽 가장 깊은 자리엔,
앉아 있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자히르는 생각보다 더 조용한 인상이었다.
시온은 처음 그를 봤을 때, 위압감보다 먼저 버텨 온 시간의 마른 감각을 느꼈다. 사막 바람과 열에 오래 깎인 사람. 억지로 화려하게 꾸민 흔적은 없는데도, 그가 앉아 있는 자리 자체가 이미 이 공간의 중심처럼 보였다. 붉은 기가 바랜 천을 여러 겹 걸쳤고, 손 가까이 놓인 금속 장치는 장식보다 실용에 가까웠다. 웃고 있진 않았지만 노골적으로 화난 얼굴도 아니었다. 대신 여기까지 굴러들어온 값들을 전부 한 번씩 재 본 뒤라는 듯한 눈이었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이쪽이 누구인지 아직 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너희는 결국 내 앞까지 오게 되는 값이었고, 지금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식의 태도.
하룬이 먼저 멈춰 섰다.
나심이 아주 낮게 말했다.
“밖에서 좀 시끄러웠습니다.”
자히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천천히 움직였다. 시온, 서린, 아테르, 카엘, 루하이. 마지막으로 루하이 손 안 에테라이트와 카엘 품 안 조각에 잠깐씩 더 오래 머물렀다. 그 눈길엔 놀람이 없었다. 오히려 이미 예상한 판 위에 새 조각 몇 개가 올라온 걸 확인하는 사람의 차가운 흥미가 더 가까웠다.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시끄럽긴 했겠지.”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근데 그 작은 목소리가 공간 안쪽으로 곧게 퍼졌다. 소리를 키우지 않아도 모두가 듣는다는 걸 너무 오래 경험한 사람의 목소리. 이 사람은 위세를 높이기 위해 고함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시온은 그 한마디만으로도 자히르를 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분노로 공간을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판 위에 들어온 것들의 값을 침착하게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더 무섭다.
자히르 시선이 루하이에게 닿았다.
“또 너냐.”
그가 말했다.
루하이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 짧은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저 둘은 처음 보는 사이가 아니다. 적어도 루하이는 자히르 앞에 몇 번쯤 잡혀 와 본 애다. 입 빠른 좀도둑이면서도 아직 안 죽었다는 건, 자히르가 완전히 가치 없다고 보진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루하이가 작게 입술을 씹다가 말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집었어.”
나심이 옆에서 웃었다.
“변명은 여전하네.”
자히르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물었다.
“진짜인 줄 알고.”
루하이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은 이미 반쯤 대답이었다.
시온은 그 짧은 공방만으로도 자히르가 루하이를 어떻게 보는지 알 것 같았다. 귀찮고, 입이 길고, 손버릇도 나쁜데, 가끔은 남들이 못 집는 걸 집어 드는 애. 죽여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오래 풀어 두기도 귀찮은 종류의 가치.
이번엔 자히르 시선이 카엘에게 갔다.
“넌 새 얼굴이군.”
그가 낮게 말했다.
“근데 안고 있는 건 안 새 것 같고.”
카엘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럴지도.”
그가 짧게 답했다.
자히르는 그 대답 끝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대신 곧바로 시온 쪽으로 옮겼다.
“이름을 들고 왔지.”
그가 말했다.
시온은 그가 어떤 이름을 말하는지 묻지 않았다.
아카.
이 안쪽에선 더 이상 그 이름을 숨기는 척도 안 했다. 적어도 자히르 앞에선.
시온은 숨기지 않았다.
“읽는 손이 남겼어.”
그가 말했다.
“하즈란과 아카. 둘만.”
짧은 정적.
그 정적 안에서 시온은 자히르가 처음으로 흥미를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걸 봤다. 크게 반응하진 않았지만, 시선이 한 번 더 가라앉았다. 읽는 손. 그건 이 바닥에서도 함부로 지나칠 수 없는 말인 모양이었다.
“읽는 손이.”
자히르가 아주 낮게 되뇌었다.
“그럼 네가 들고 온 건 호기심이 아니겠네.”
서린이 끼어들었다.
“배를 살릴 에테라이트가 필요하고, 이름을 확인할 손도 필요해.”
“둘 다.”
자히르가 말했다.
“그리고 둘 다 밖에선 못 구했지.”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
서린이 답했다.
자히르는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움직였다. 웃음이라기보다, 예상보다 빨리 본론까지 왔다는 만족에 가까웠다.
“적어도 말은 빠르군.”
그가 낮게 말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아주 한 번만 두드렸다.
“아카.”
그가 말했다.
“네가 본 건.”
아카는 자히르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조각과 에테라이트, 그리고 시온 일행이 들고 온 결을 보는 쪽이었다.
“문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문을 기억하는 흉내야.”
자히르는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대신 아주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듣는 정보라기보다, 이미 몇 번 비슷한 결을 의심해 본 사람의 반응 같았다.
“그래서 저걸 쫓아온 손들은 다 잘못 들어왔다는 거군.”
그가 낮게 말했다.
아카는 이번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잘못 들어온 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근데 저걸 문이라고 믿고 있으면 끝까지 못 가.”
시온은 그 말이 방금 전보다 더 무겁게 박히는 걸 느꼈다. 잘못 들어온 건 아니다. 하지만 잘못 믿고 있으면 끝까지 못 간다. 그건 희망과 절단을 동시에 주는 말이었다.
아테르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어떻게 가야 하죠.”
아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잠깐, 처음으로 시온 얼굴을 제대로 봤다. 그 시선은 사람을 읽는 눈이라기보다, 이 사람이 어디까지 잘못된 문을 따라가고도 안 꺾일지를 재는 눈처럼 느껴졌다.
“저걸 먼저 떼야 해.”
그녀가 말했다.
“흉내랑 자리.”
시온은 그 문장이 아직 완전한 설명은 아니어도, 적어도 다음 작업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가리킨다고 느꼈다. 잘린 자리에서 흉내를 떼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문이 있었던 자리에 끝까지 닿을 수 없다.
나심이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문제는 더 선명해지네.”
“배는 살려야 하고, 흉내는 떼야 하고, 이름은 더 깊이 묶여 있고.”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이쯤이면 밖에서 못 푸는 이유가 선명하지 않나.”
카엘이 아주 낮게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자히르가 직접 답했다.
“그래서 판을 바꿔야지.”
그가 말했다.
짧은 정적.
그 말은 단순한 제안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 사람은 지금 방 안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주는 척하면서, 이미 모두를 자기 방식의 다음 단계로 넘기고 있었다.
서린이 차갑게 물었다.
“무슨 판.”
자히르는 이번에야 아주 조금 웃었다.
“하즈란에서 진짜를 들고 있는 손을 가리는 판.”
그가 말했다.
“밖에선 다들 입으로만 떠들잖아.”
루하이가 작게 얼굴을 구겼다.
“듣기만 해도 더럽네.”
자히르는 그를 한 번 보고 말했다.
“그래도 넌 늘 거기서 기어오르더군.”
루하이는 대꾸하지 못했다.
시온은 그 짧은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자히르는 사람을 이름으로 기억하기보다, 어떤 판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지로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루하이를 죽이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자신들한테도 바로 칼을 들이대지 않는 거다. 일단 값부터 본다. 그다음에 어디에 올릴지 정한다.
하룬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자히르가 `판`을 꺼낸 순간 아주 미세하게 턱을 굳혔다. 시온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하룬은 통제를 먼저 믿는 사람이고, 자히르는 판을 통해 사람값을 보는 사람이다. 둘은 한편인데도, 같은 방식을 믿는 건 아닐 수 있었다.
나히라는 그 미세한 긴장을 다 본 얼굴로 아카 쪽을 한 번 봤다.
아카는 여전히 조용했다. 근데 이번엔 입 닫은 채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이미 다음에 뭘 봐야 하는지 알고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시온은 그 순간 거의 확신했다.
아카는 이 판을 두려워하면서도,
어쩌면 이 판 너머에서만 볼 수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아직 안 떠나는 거다.
그래서 아직 같이 가겠다고도, 안 가겠다고도 말하지 않는 거다.
자히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룬.”
하룬이 짧게 시선을 들었다.
“준비해.”
그 두 글자가 방 안 공기를 다시 한 번 바꿨다.
이제부터는 단순한 심문도, 거래도 아니다.
하즈란 방식으로,
누가 진짜를 들 수 있는지,
누가 끝까지 버티는지,
누가 흉내와 자리를 가를 수 있는지,
판 위에서 보겠다는 선언에 더 가까웠다.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눌렀다.
`하즈란`
`아카`
여기까지 왔을 때도 그 두 단어뿐이었는데,
이제는 그 두 단어가 다음 판 전체를 여는 열쇠처럼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