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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손의 값이 달리는 곳

# 46화. 손의 값이 달리는 곳 자히르의 `준비해`가 떨어진 뒤, 안쪽 공간은 다시 빠르게 움직였지만 어수선하진 않았다. 시온은 그게 하즈란 안쪽의 제일 기분 나쁜 점이라고 느꼈다. 바깥층 시장은 시끄럽고 흩어져 있어서 오히려 틈이 보였는데, 여기선 전부가 정리된 채 움직였다. 누가 뭘 들고 어디로 가는지, 어느 순간 어떤 말을 멈춰야 하는지, 누가 앞서고 누가 남는지. 다들 이미 여러 번 해 본 일처럼 움직였다. 그러니까 자히르가 말한 `판`도 즉흥적인 장난이 아니라, 이곳이 원래부터 굴려 오던 방식일 가능성이 컸다. 하룬은 가장 먼저 나갔고, 나심은 그보다 조금 늦게 따라붙으며 바깥으로 흘릴 말과 안쪽에 남길 말을 머릿속에서 가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히라는 아카 곁에 붙었다. 붙잡아 끄는 모양은 아니었지만, 그 거리 자체가 이미 안쪽 규칙이었다. 가까이 두되, 함부로 손 닿는 곳에 두진 않는 거리. 루하이는 에테라이트를 넘기지 않은 채 움직이게 됐다. 대신 손목 가까이에 안쪽 사람 하나가 붙었다. 맡긴 것도 아니고, 온전히 지킨 것도 아닌 상태. 시온은 그 애매함이 일부러 만들어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즈란은 확실하게 뺏어 버리는 것보다, 쥐고는 있게 하면서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쪽을 더 잘 아는 곳이다. 카엘도 조각을 품은 채 따로 유도됐다. 노골적으로 떼어 놓였지만, 아직 완전히 빼앗긴 건 아니었다. 아카 말대로라면 둘을 멀리 둬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카엘 조각과 루하이 에테라이트를 같은 시야 안에서도 점점 다른 선으로 갈라 놓는 중이었다. 시온과 서린, 아테르는 마지막에 움직였다. 그 셋만 아직 설명을 덜 들은 쪽이라기보다, 오히려 이제부터 직접 규칙을 듣게 될 쪽처럼 느껴졌다. 안쪽 통로를 빠져나오자 열기가 다시 세졌다. 근데 바깥층 시장의 열과는 달랐다. 여긴 사람이 모여서 데워진 열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이 자리 바닥과 철판, 천막 줄, 매단 금속틀에 스며 있던 낮의 열이 천천히 올라오는 쪽이었다. 밤이 깊었는데도 식지 않은 열. 하즈란 전체가 아직 깨어 있다는 증거 같았다. 나심이 옆에서 가볍게 말했다. “운이 좋네.” 시온은 그 말이 또 거슬릴 뻔했지만, 이번엔 서린보다 아테르가 먼저 물었다. “뭐가요.” 나심은 웃었다. “오늘 밤이 딱 맞아떨어졌거든.” 그가 말했다. “밖에서 난 소문도, 저 애가 집은 조각도, 너희가 들고 온 이름도.” 시온이 낮게 물었다. “원래도 오늘 뭔가 열릴 예정이었단 뜻이네.” 나심은 시선을 앞에 둔 채 대답했다. “하즈란엔 늘 뭐든 열리지.” 그가 말했다. “근데 전부가 판이 되진 않아.” 그건 긍정이었다. 오늘은 원래부터 바깥까지 시선이 모이는 밤이었고, 자히르는 그 위에 자신들을 얹었다. 서린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우릴 맞춰 쓴 게 아니라, 있던 판에 던져 넣는 거네.” “그게 더 싸게 먹히잖아.” 나심이 부드럽게 답했다. 시온은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싫었다. 사람 몇 명, 이름 하나, 배 하나가 그저 판에 얹기 좋은 값처럼 다뤄지는 곳. 하지만 동시에, 그런 식이라서 자신들이 갑자기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자히르가 판 전체를 새로 짜는 사람이라면 시간이 더 들었을 거다. 지금은 이미 준비돼 있던 무대 위에, 예상 밖의 진짜 몇 개가 추가된 상황에 더 가까웠다. 통로 끝을 돌자 시야가 확 열렸다. 사막 밤하늘이 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넓은 중정이었다. 반쯤 무너진 선체 벽과 금속 발판, 모래 위에 박아 세운 기둥들이 원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천막과 난간, 임시 관람대 같은 구조물이 층층이 붙어 있었다. 바깥층 시장보다 훨씬 넓은데도 더 정돈돼 있었고, 더 시끄러울 법한데도 이상하게 소음은 눌려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떠들러 온 게 아니라 지켜보러 온 얼굴들이었다. 시온은 그 자리를 보자마자 한지우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아쉬워졌다. 저런 구조는 분명 한 번만 훑어도 출입선과 탈출선, 위험선이 다 보였을 텐데. 아테르는 이미 눈으로 높낮이와 발판 연결 상태를 읽고 있었다. 서린은 소리보다 사람 배치를 먼저 보고 있었다. 시온은 그 둘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 문장을 떠올렸다. 여긴 싸움을 보는 곳이 아니라, 손의 값을 다는 곳이다. 누가 진짜를 잡는 손인지, 누가 놓치는 손인지, 누가 끝까지 버틸 손인지. 하룬이 앞에서 멈춰 섰다. 그를 보자 주위에 있던 몇몇 시선이 바로 가라앉았다. 존경이라기보다, 귀찮은 일은 만들지 말자는 종류의 경계. 나심이 그 옆에 서자 반대로 주변 공기가 조금 넓어졌다. 저 사람은 규칙을 집행하는 손이라기보다, 규칙을 사람들 입에 맞게 번역하는 입에 가까웠다. 루하이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늦췄다가, 곧 옆에서 붙은 감시 손에 다시 속도를 맞췄다. 카엘은 다른 선으로 유도되고 있었다. 아주 멀진 않았지만, 더는 서로 소리만으로 연결되지 않을 만큼은 떨어졌다. 아카는 나히라와 함께 가장 안쪽 그늘에 가까운 쪽으로 움직였다. 시온은 그 순간만큼은 자히르가 왜 아카를 쉽게 판 한가운데 올리지 않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아이는 상징이 아니라 칼날에 가깝다. 너무 빨리,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판 자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안 굴러갈 수도 있다. 그때, 중정 한가운데 낮은 금속판 위로 누군가가 올라섰다. 시온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하즈란 사람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주목을 끌 줄 아는 사람. 오래 이 자리에 서서 값과 이름과 판돈을 불러 온 사람의 태도였다. 그가 입을 열자 주변 웅성거림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오늘은 원래 세 건이었다.” 그가 말했다. “근데 밤이 욕심을 냈지.” 주변 몇몇이 낮게 웃었다. 시온은 그 짧은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건 즉흥 멘트가 아니라, 이 바닥 사람들이 익숙하게 받아먹는 개회 문장에 가까웠다. “밖에서 들어온 손이 둘 있고,” 그 남자가 이어 말했다. “안쪽에서 주워 온 진짜가 하나 있고, 이름값이 붙은 소문도 끼었다.” 그는 대놓고 시온 일행과 루하이 쪽을 훑었다. “그러니 오늘은 보는 눈도 값을 제대로 치러야지.” 시온은 눈살이 아주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보는 눈도 값을 치른다. 그 말은 곧,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단순 구경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여긴 누가 이기고 지는지만 보는 곳이 아니라, 누가 진짜를 알아보는지까지 같이 걸어 놓는 자리. 나심이 아주 낮게 말했다. “이제 알겠지.” 그가 웃으며 덧붙였다. “하즈란은 구경도 공짜가 아니야.” 이번엔 시온이 대꾸하지 않았다. 이미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룬이 뒤를 돌지 않은 채 말했다. “곧 이름이 불린다.” “누구 이름.” 시온이 물었다. “누가 먼저 자기 손값을 낼지.” 하룬이 짧게 답했다. 그 말은 사람 이름일 수도 있었고, 물건 이름일 수도 있었고,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시온은 재킷 안쪽이 조금 더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자히르는 안쪽에서 판을 던졌고, 하룬은 이 자리까지 끌고 왔고, 나심은 규칙을 웃으며 번역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누가 제일 먼저 그 판 위로 올라서게 되느냐였다. 그리고 시온은 이상하게도 그 첫 이름이, 자기 쪽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응원은 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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