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처음 불린 이름
# 47화. 처음 불린 이름
중정 한가운데 선 남자가 마지막 말을 삼킨 뒤, 주변 공기는 한 번 더 가라앉았다.
시온은 이제야 이 자리가 단순히 사람을 모아 놓는 곳이 아니라, 침묵 자체까지 규칙으로 굴리는 장소라는 걸 느꼈다. 누가 먼저 떠들고, 누가 먼저 흥분하고, 누가 먼저 고개를 돌리는지까지도 다 값에 들어가는 곳. 그래서 방금 전까지 낮게 웃고 중얼거리던 사람들도, 결정적인 순간엔 이상할 만큼 빠르게 조용해졌다.
하룬은 중정 가장자리에서 팔짱을 끼지 않은 채 서 있었고, 나심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저 둘은 무대 중앙에 설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신 누가 어디까지 가는지, 누가 무너지는지, 누가 예상 밖으로 튀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볼 자리로 이미 옮겨 가 있었다.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한 번 눌렀다가 손을 뗐다.
`하즈란`
`아카`
두 단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워져서 손에 들어온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구조 안으로 들어와 버려서 지금 당장은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중앙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첫 번째는 간단하다.”
그가 말했다.
“손이 진짜를 알아보는지 본다.”
주변 몇몇이 낮게 숨을 삼켰다.
시온은 그 짧은 반응에서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이 바닥에선 자주 쓰는 규칙일 수 있어도, 쉬운 규칙은 아니다. 진짜를 알아본다는 건, 결국 가짜를 먼저 걸러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이 사막에서 가짜는 대개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어진다.
중앙 금속판 위로 검은 천이 덮인 얕은 받침 셋이 올라왔다.
누가 언제 가져다뒀는지도 모르게 조용한 손들이 움직였다. 천 아래엔 각각 비슷한 크기의 물건이 놓여 있는 듯했다. 형태는 같아 보이는데, 무게감은 미묘하게 달랐다.
시온은 자기도 모르게 아카 쪽을 찾았다.
아카는 아직 가장 안쪽 그늘에 가까운 데 서 있었다. 나히라가 한 발 앞을 가린 채였지만, 그럼에도 아카 시선은 이미 중앙 받침 셋에 닿아 있었다. 근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히르가 아카를 쉽게 무대 가운데 올리지 않는 이유가 다시 한 번 보였다. 저 아이가 한마디만 해도, 이 판 첫 규칙은 너무 쉽게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건 아카가 아니라,
아카 없이도 어느 정도는 진짜를 가를 수 있다고 믿는 손을 골라내는 일일 거다.
중앙의 남자가 말했다.
“세 개 중 하나는 진짜다.”
그가 말했다.
“하나는 진짜였던 자리의 흉내고, 하나는 애초에 값도 못 붙는 쓰레기다.”
루하이가 아주 작게 욕 비슷한 숨을 삼켰다.
시온은 그 애가 왜 반응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눈썰미 테스트가 아니다. 하즈란 중심부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걸 그대로 축약한 문제였다. 진짜, 흉내, 애초에 아닌 것. 문과 문인 척하는 것, 그리고 그냥 값도 없는 것.
나심이 아주 낮게 웃었다.
“예쁘게 시작하네.”
그가 중얼거렸다.
서린이 그 말을 듣고 눈만 한번 굴렸다.
“예쁜 건 네 말버릇이고.”
그녀가 낮게 말했다.
중앙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첫 이름.”
그가 또렷하게 말했다.
시온은 그 순간 이상하게 숨이 먼저 얕아졌다.
자기일 수도 있다는 예감이 아까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루하이.”
루하이는 거의 반사처럼 욕을 삼켰다.
주변에서 낮은 웃음이 한번 퍼졌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놀라운 호출은 아닌 모양이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들 기다렸다는 쪽에 가까웠다. 안쪽에서 진짜 조각을 먼저 집어 든 애, 장부를 건드리는 애, 가짜와 진짜 냄새를 쫓아다니다 제일 먼저 사고를 낸 애. 첫 호출로는 딱 맞았다.
루하이는 옆 감시 손을 한 번 보고, 다시 중앙을 봤다.
“이거 거부하면?”
그가 퉁명하게 물었다.
중앙 남자가 웃지도 않고 답했다.
“그럼 오늘 밤 네 값은 거기서 끝이지.”
루하이는 혀를 찼다.
“진짜 재수 없네.”
“그래도 올라오잖아.”
카엘이 낮게 말했다.
루하이는 그 말을 듣고 짜증 섞인 눈으로 그를 한 번 봤다. 근데 이번엔 반박 대신 코웃음 비슷한 숨만 내쉬었다. 이미 자기도 안다. 여기서 발을 빼는 건 도망이 아니라 바로 값이 떨어지는 거다. 적어도 루하이 같은 애한텐.
그는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시온은 그 걸음이 생각보다 덜 가볍다는 걸 봤다. 입은 빠르고 손은 먼저 나가지만, 막상 진짜로 선 위에 올려놓으면 겁이 없는 애는 아니다. 다만 겁보다 먼저 계산이 도는 타입일 뿐.
중앙 남자가 물었다.
“어느 손으로 보지.”
루하이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내 손이지, 누구 손이겠어.”
주변에서 다시 낮은 웃음이 났다.
중앙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집어.”
천은 아직 들춰지지 않았다.
루하이는 세 받침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시온은 그 애 눈이 받침 자체보다, 천 가장자리와 받침 밑 그림자, 올려놓을 때 남은 흔적을 더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건 그냥 물건을 고르는 눈이 아니었다. 훔치고 도망치고, 누가 진짜를 어디에 숨기는지 오래 봐 온 애의 눈이었다.
첫 번째 받침 앞에서 루하이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근데 집지 않았다.
두 번째.
이번엔 손끝이 천 위를 거의 스치다 말았다.
세 번째 앞에서, 루하이는 처음으로 진짜 숨을 한번 멈췄다.
시온은 그 반응이 너무 미세해서 오히려 더 신경이 곤두섰다. 루하이는 지금 확신한 게 아니라, 세 개가 서로 어떻게 다르게 거짓말하는지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히라도 아무 말이 없었다.
하룬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심만 아주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루하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거.”
그는 두 번째 받침을 가리켰다.
“왜.”
중앙 남자가 물었다.
루하이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첫 번째는 너무 티 나게 진짜 흉내 내고,”
그가 말했다.
“세 번째는 반대로 너무 대충 숨겼어. 이 바닥에서 진짜는 그렇게 안 굴러.”
중앙 남자가 더 물었다.
“그래서 둘째?”
“둘째는,”
루하이가 아주 낮게 말했다.
“숨긴 척은 하는데, 끝까지 자기가 뭔지 다 못 감췄어.”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지금 이 하즈란 전체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자히르가 안쪽에서 꺼낸 규칙,
아카가 판정한 문의 흉내,
그리고 자신들이 쫓아온 잘린 자리까지.
시온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얕게 골랐다.
중앙 남자가 천천히 둘째 받침 위 천을 걷었다.
안엔 불규칙한 금속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언뜻 보면 낡은 부품처럼도, 조금 더 귀하게 보면 오래된 접합편처럼도 보이는 물건.
주변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시온은 그 반응만으로도 이게 완전한 실패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적어도 완전한 쓰레기를 고른 건 아니다.
근데 그게 진짜인지, 흉내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다.
중앙 남자가 조각을 한 번 들어 올려 모두에게 보였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절반은 맞았다.”
루하이 얼굴이 굳었다.
주변 공기엔 웃음과 실망과 흥미가 한꺼번에 섞였다.
중앙 남자가 조각을 다시 내려놓았다.
“이건 흉내다.”
그가 말했다.
“근데 값은 있다. 진짜가 있었던 자리를 오래 물고 있었으니까.”
시온은 그 말이 등 안쪽으로 서늘하게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흉내인데,
값은 있다.
그건 지금까지 아카가 말해 온 것과 정확히 닿아 있었다. 흉내라고 해서 전부 무의미한 게 아니다. 어떤 흉내는 진짜가 있던 자리를 오래 물고 있어서, 오히려 더 위험하다.
루하이는 입술을 한번 씹었다.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서 더 열받는 얼굴이었다.
중앙 남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좋아. 그럼 다음은 더 어렵게 간다.”
시온은 그 순간, 첫 호출이 루하이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다음 이름은,
아까보다 더 높은 값을 가진 쪽에서 불릴 가능성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