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그녀가 끝내 보여 준 안쪽
# 62화. 그녀가 끝내 보여 준 안쪽
중정 정산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바로 흩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판이 한번 크게 뒤집힌 자리일수록, 하즈란 사람들은 더 늦게 움직였다. 누가 정말 졌는지, 누가 진짜를 들고 있는지, 누가 다음 판돈을 쥐게 되는지 끝까지 보고 나서야 발을 뗐다. 그래서 자히르가 `보상은 안쪽에서 정산한다`고 말한 뒤에도, 중정 공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 말은 허락이었고,
동시에 선 긋기였다.
여기부터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여기까지만 보고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이 갈린다는 뜻.
하룬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심도 이번엔 농담을 붙이지 않았다. 루하이는 말하고 싶어 죽겠는 얼굴이었지만, 진짜로 끼어들면 바로 잘릴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애답게 이를 한 번 깨물고 참았다. 서린은 그런 주변 반응보다 오히려 자히르와 아카, 나히라 사이 거리부터 다시 읽고 있었다.
시온은 아직 손안 불씨를 놓지 않았다.
이제는 경기장에서 가져온 전리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까지 들고 들어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열쇠에 가까웠다. 아주 낮고 끈질기게 살아 있는 열이 손안에서 계속 맥을 쳤다.
자히르는 짧게 말했다.
“안으로.”
그 한마디에만 하룬과 나히라, 그리고 안쪽 검은 천을 두른 손 둘이 움직였다. 과하게 많은 인원을 붙이지 않는 것도 규칙 같았다. 진짜를 들고 들어가는 데는, 구경꾼보다 증인이 적어야 한다는 식으로.
“어디까지?”
서린이 낮게 물었다.
자히르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답했다.
“보여 줄 만큼.”
서린은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지만 더 묻진 않았다. 지금 이 하즈란 안쪽에서 중요한 건, 먼저 더 많은 말을 따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어디까지 보여 주는지 보는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쪽 통로는 경기 전 지나온 구획보다 더 조용했다.
바깥의 열기와 모래 냄새가 얇아지고, 오래 닦인 금속 냄새와 마른 약재, 물기 없는 천 냄새가 더 가까워졌다. 누군가를 오래 머물게 하되, 함부로 안심하게 하진 않는 공간의 냄새였다. 시온은 아카를 처음 본 천막 안쪽을 떠올렸다. 근데 지금은 그보다 더 깊었다. 생활 공간이면서 동시에 감춰진 구획. 사람을 쉬게도 하고, 격리하기도 하고, 시험 통과한 손만 들이는 쪽에 가까운 안쪽.
루하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와, 진짜로 들여보내네.”
나심이 이번엔 웃지 않고 말했다.
“너까지 들여보내는 건 아직 정한 적 없는데.”
루하이 입이 바로 다물어졌다.
시온은 그 짧은 장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안쪽으로 가는 사람은 단순 동행이 아니라, 방금 판 결과에 직접 연결된 손들뿐이다. 진짜 불씨를 든 손, 그 불씨를 살려 돌아오게 한 손, 그리고 그 결과를 판정할 손.
카엘은 여전히 말이 적었다. 대신 안쪽 벽면과 출입 구조, 하룬 사람들 손 위치를 계속 보고 있었다. 경기가 끝났다고 해서 경계가 죽은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조용한 구간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몸이 먼저 아는 사람의 눈이었다.
세른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이 안쪽 구조 자체를.
누가 어디서 오래 머무는지, 어떤 문이 생활용인지, 어떤 문이 저장용인지, 어디가 물과 약재 쪽이고 어디서 금속 냄새가 더 진한지. 계산하는 사람은 늘 이렇게 공간을 읽는다. 나중에 도망치려는 게 아니라, 지금 어떤 보상이 말뿐이고 어떤 건 실제로 존재하는지부터 구분하려고.
통로 끝에서 자히르가 멈췄다.
그 앞엔 반쯤 드러난 새로운 구획이 있었다.
처음 보는 공간이었지만, 시온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여긴 대기실도, 작업장도, 중정 같은 공개 판도 아니다. 안쪽에서도 더 안쪽. 자히르가 함부로 바깥 사람을 들이지 않는 진짜 안쪽.
그리고 그 안에는,
해체되다 만 선체 하나가 걸려 있었다.
정확히는 폐선체 골격만 남은 게 아니었다.
기존 사막 스키프나 활주기와는 결이 다른 선체였다. 길이는 더 길고, 골격은 더 가늘었고, 외피는 반쯤 벗겨져 있었지만 원래 형태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날개라기보다 접힌 지느러미 같은 확장판 구조, 사막용 부양장치와는 다른 방향의 추력 고정부, 그리고 군데군데 덧대어진 에테라이트 결합 흔적.
한지우 눈이 처음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번엔 조종사가 기체를 보는 눈이 아니라,
죽은 줄 알았던 기체가 아직 완전히 안 죽었다는 걸 알아본 사람의 눈이었다.
그는 거의 반사처럼 한 걸음 앞으로 갔다.
“이거…”
말을 끝까지 못 했다.
시온도 숨을 멈췄다.
이건 단순 보상이 아니었다.
에테라이트 조금 주고 끝낼 금속 거래가 아니라,
아예 다음 단계 이동 수단을 통째로 걸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이었다.
루하이도 이번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그가 진짜로 감탄하며 말했다.
“이걸 안쪽에 숨겨놨다고?”
하룬은 그제야 짧게 말했다.
“아직 완성은 아니다.”
한지우가 그 말을 바로 받았다.
“근데 죽진 않았네.”
자히르는 그 반응을 보고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움직였다.
“볼 줄 아는군.”
그가 말했다.
한지우는 이번엔 시선을 안 뗀 채 답했다.
“이런 걸 폐품으로 착각하는 손은 여기까지 못 살아.”
짧은 정적.
나심이 그제야 아주 옅게 웃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이제야 거래가 사람답네.”
시온은 그 말이 싫었지만, 부정하지는 못했다. 이건 확실히 작은 보상이 아니었다.
그때, 아카가 처음으로 그 선체 쪽으로 걸어 나왔다.
아주 조용한 걸음이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안쪽에선, 그 몇 걸음이 자히르 말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카는 선체 옆 가까이까지 간 뒤 손을 올리지 않고, 그냥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숨을 한 번 골랐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이건 아직 문을 흉내 내진 않아.”
시온은 그 말이 이상하게 안심처럼 들어왔다.
완전한 문은 아니다.
근데 적어도 거짓은 아니라는 뜻.
아카는 이번엔 시온 손안 불씨를 봤다.
“그거 없으면 오래 못 가.”
그녀가 말했다.
“근데 그것만으로도 못 떠.”
“뭐가 더 필요해?”
시온이 바로 물었다.
아카는 잠깐 멈췄다.
“이어 줄 사람.”
그녀가 말했다.
시온은 그 말이 단순한 기술 인력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불씨가 있고,
죽지 않은 선체가 있고,
근데 그 둘을 그냥 붙인다고 길이 열리는 건 아니다.
그 사이 문법을 이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세른이 아주 낮게 물었다.
“그게 너야?”
아카는 그를 봤다.
짧고 조용한 시선.
“나 혼자선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근데 내가 안 보면 또 죽여.”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중정에서부터 끌고 온 모든 선이 한 번에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짜 문.
문을 기억하는 흉내.
길이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증거.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아직 안 죽은 선체.
이제 필요한 건,
이걸 보고,
이어 주고,
죽지 않게 만드는 손이다.
자히르는 그 대화를 끝까지 듣고 나서야 낮게 말했다.
“보상은 세 가지다.”
그가 말했다.
“에테라이트. 저 선체. 그리고 저 아이가 줄 말.”
루하이가 거의 숨을 삼켰다.
“와, 진짜로 다 거네.”
서린은 이번엔 웃지 않았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보상이 아니라, 다음 아크 전체를 통째로 건 판에 가깝다.
자히르 시선이 다시 시온과 한지우, 카엘, 세른 쪽으로 옮겨왔다.
“근데 셋 다 공짜는 아니지.”
그가 말했다.
시온은 오히려 그 말이 반가웠다.
그렇지.
하즈란이 그냥 주는 방식으로 끝날 리 없다.
그게 더 자히르답다.
“뭐가 남았지?”
시온이 물었다.
자히르는 아주 낮게 답했다.
“안쪽으로 더 들어올 각오.”
그 한마디에,
이 안쪽 공간마저 아직 문턱에 불과했다는 게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