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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모두에게 열지 않은 문턱

# 63화. 모두에게 열지 않은 문턱 자히르가 `안쪽으로 더 들어올 각오`를 말한 뒤에도,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온은 그 짧은 침묵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까지 와서 너무 쉽게 `간다`고 말해 버리면, 지금 눈앞에 걸린 값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에테라이트. 죽지 않은 선체. 그리고 아카가 줄 말. 셋 다 필요하다. 근데 셋 다 그냥 손 내밀면 받을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자히르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 문턱을 남겨 둔 사람처럼 보였다. 한지우가 먼저 입을 열 줄 알았다. 근데 뜻밖에도 먼저 움직인 건 서린이었다. “조건부터 끝까지 듣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 “여기선 안으로 들어가서야 딴소리 붙이는 식도 많아 보여서.” 나심이 그 말을 듣고 아주 미세하게 웃었다. “그래서 네가 오래 사나 보네.” 서린은 그쪽을 안 봤다. “오래 살 생각은 없고.” 그녀가 말했다. “덜 멍청하게 죽고 싶을 뿐이지.” 그 말에 루하이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삼켰다. 하룬은 여전히 표정이 없었고, 자히르는 그 짧은 말들을 다 들은 뒤에도 바로 감정을 얹지 않았다. 대신 아주 낮게 말했다. “좋아.” 그가 말했다. “그럼 이 안쪽이 뭘 요구하는지부터 말하지.” 시온은 그 말에 자연스럽게 손안 불씨를 더 단단히 쥐었다. 자히르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그 불씨는 증명이다.” 그가 말했다. “길이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증명. 근데 증명만으로는 안 움직인다.” 아카는 그 말을 끊지 않았다. 오히려 자히르가 어디까지 대신 말하는지 듣고 있는 얼굴이었다. “저 선체도 마찬가지다.” 자히르가 이어 말했다. “죽지 않았다고 바로 떠오르진 않는다. 에테라이트도 필요하고, 이어 줄 눈도 필요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말도 필요하지.” 시온은 그 말이 결국 하나로 모인다는 걸 느꼈다. 불씨, 선체, 아카. 셋은 따로 보상처럼 걸려 있지만, 사실은 같이 붙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한 묶음에 더 가까웠다. 한지우가 이번엔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뭘 더 보라는 거지.” 자히르는 짧게 답했다. “안쪽.” 그 한 단어만으론 설명이 부족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가 그게 단순한 위치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더 깊은 구획. 더 감춰진 기록. 혹은 아카가 실제로 길과 문법을 읽는 자리. 지금까지 보여 준 건 겨우 문턱이고, 실제로 이어야 할 걸 보려면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 세른이 아주 낮게 물었다. “전부 들어갑니까.” 이번엔 자히르가 대답하기 전에 아카가 먼저 말했다. “아니.” 중정 안쪽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멎었다. 아카는 여전히 조용한 얼굴이었다. 근데 이번엔 그 조용함 안에 분명한 선이 있었다. 모두가 같이 들어갈 수는 없다. 모두가 같은 걸 봐도 안 된다. 누가 어디까지 들어오느냐는, 지금 이 안쪽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 중 하나인 것처럼. 시온은 자기도 모르게 아카를 봤다. 아카는 시온 손안 불씨와, 한지우 쪽 죽지 않은 선체를 한 번씩 보고 나서야 아주 낮게 말을 이었다. “다 들이면 또 많아져.” 그녀가 말했다. “많아지면 또 죽는 척하는 게 붙어.” 그 문장은 짧았는데, 그 안엔 지금까지 하즈란 전체가 어떻게 굴러왔는지가 다 들어 있었다. 너무 많은 손. 너무 많은 값. 너무 많은 거짓 반응. 그러니까 진짜를 이어야 하는 순간엔, 오히려 손을 줄여야 한다. 서린이 가장 먼저 그 뜻을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필요한 손만 들이라는 거네.” 그녀가 말했다. 아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씨 든 손.” 그녀가 시온 쪽을 보고 말했다. “죽은 거 안 죽은 걸 보는 손.” 이번엔 한지우 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리고 이어질 때 안 부러뜨릴 손.” 한지우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 그건 칭찬 같지도, 신뢰 같지도 않았다. 근데 적어도 아카가 자기를 기체 다루는 사람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세른이 이번엔 말을 아꼈다. 시온은 그 침묵이 오히려 세른답다고 느꼈다. 자기도 들어가서 보고 싶을 거다. 구조를 읽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근데 지금은 자기가 가장 필요한 손이 아니라는 것도 동시에 알아버린 얼굴이었다. 카엘이 그를 힐끗 봤다. “괜찮냐.” 세른은 짧게 답했다. “싫어도 맞는 건 맞아.” 루하이는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자기 입이 얼마나 가벼운 값으로 취급될지 알아버린 눈이었다. 아테르는 자히르와 아카를 번갈아 봤다. 그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길과 승인, 잘린 순서와 봉인 개입이 얽힌 문제라면 오히려 자신이 봐야 맞는다고 여길 법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선 기록보다 살아 있는 문법이 먼저였다. 아테르는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숨을 골랐다. “둘만?” 그가 조용히 물었다. 이번엔 아카가 아니라 나히라가 답했다. “둘이면 적다.” 그녀가 말했다. “셋부터는 다시 많아져.” 시온은 그 말이 이해됐다. 지금 필요한 건 설명을 길게 늘이는 자리가 아니라, 진짜로 이어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다. 그러면 보는 사람도, 만지는 사람도 적어야 한다. 자히르는 그제야 마지막 선을 그었다. “시온.” 그가 말했다. “한지우.” 짧은 정적. “안으로 들어간다.” 한지우가 먼저 대답했다. “좋아.” 시온은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 먼저 든 감정은 긴장이었다. 근데 그 긴장 아래엔 이상하게도, 이제야 진짜 아카 쪽 문턱에 닿는다는 감각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름과 소문과 판을 따라왔고, 방금부터가 실제로 그 안쪽에 발을 들이는 단계였다. 서린이 바로 물었다. “그럼 우린.” 자히르는 그녀를 보고 낮게 말했다. “기다려.” 서린 표정이 바로 굳었다. 근데 아카가 그 말 위에 아주 조용히 한마디를 얹었다. “안 기다리면 못 나가.” 그 말이 떨어지자, 서린도 더는 바로 받지 못했다. 이건 배제의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안쪽 규칙 안에서 필요한 사람과 기다려야 할 사람을 가르는 말이었다. 시온은 손안 불씨를 보다가 다시 아카를 봤다. 아카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을 돌려, 선체 뒤쪽 더 깊은 구획으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 시온은 그걸 보는 순간 알았다. 이건 문을 열어 주는 게 아니다. 아카는 늘 그랬다. 누구에게나 같은 문을 열지 않는다. 대신 끝까지 따라올 수 있는 손한테만, 다음 문턱까지는 보여 준다. 그리고 지금, 그 문턱이 드디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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