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첫 갈아타기
# 15화. 첫 갈아타기
외곽 접속층은 중립 항구도시 안쪽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이곳은 예전엔 폐기 화물, 비공식 전달물, 기록 바깥으로 밀린 사람들을 갈라 태우던 회색 환승층이었고, 그래서 죽은 표지와 살아 있는 접속선이 늘 한데 붙어 다녔다.
조용하다는 말이 평온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더 잘 들렸다. 멀리서 지나가는 화물 견인 장치의 금속음, 정지 직전의 전력선 떨림, 어디선가 뒤늦게 닫히는 격벽 소리. 항구 안쪽이 소음으로 무언가를 감췄다면, 이쪽은 적막으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철제 승강기 문이 완전히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시온이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서린, 세른, 아테르가 순서대로 따랐다. 요나는 맨 마지막에 나와 승강기 패널을 한 번 더 건드렸다. 희미한 전원등이 꺼지고, 철문은 다시 죽은 구조물처럼 가만히 닫혔다.
“좋아.”
요나가 낮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항구 바깥이야.”
시온이 주위를 둘러봤다.
외곽 접속층이라곤 했지만, 그 말도 사실 절반만 맞았다. 정식 여객 구역도 아니고, 완전한 폐기장도 아닌 중간 지대. 오래전에 쓰다 버린 환승교와 살아 있는 접속선 몇 개가 억지로 이어져 있는 공간. 표지판은 바랬고, 조명은 절반쯤 죽어 있었고, 발밑 철판은 사람이 다녀서 닳은 게 아니라 바람과 먼지에 닳아 있는 것 같았다.
서린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좋네. 사람 살 데는 아니네.”
“그래서 갈아타는 데지.”
요나가 대꾸했다.
세른은 이미 주변 구조를 훑고 있었다.
위쪽 감시선, 아래쪽 빈 선로, 비상 전원 연결 흔적, 최근 사람 발이 닿은 자국. 이 구역은 항구 본동보다 덜 복잡했지만, 대신 잘못 읽으면 숨을 곳도 없었다.
아테르는 한 발 늦게 그 풍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립 항구도시 바깥인데도, 여전히 도시의 일부였다. 아니, 도시가 책임지지 않는 부분만 남겨둔 그림자에 가까웠다. 정식 기록으로는 한 줄도 안 남을 것 같은데, 실제론 누군가 계속 쓰고 있는 길. 그 모순이 자꾸 눈에 걸렸다.
요나가 앞쪽 어두운 선로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쪽.”
멀리, 폐선체 두 대 사이에 길게 낀 그림자 안쪽으로 작은 접속선 하나가 숨어 있었다.
화려하지도, 새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래 버틴 화물 셔틀에 가까웠다. 외부 표식은 반쯤 갈려 있었고, 등록번호도 일부러 덧칠한 흔적이 있었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척 오래 버텨온 배의 얼굴이었다.
시온은 그걸 보고 물었다.
“저거야?”
“응. 첫 갈아타기.”
요나가 짧게 답했다.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고, 저기서 성단 쪽 외곽선으로 넘긴다.”
서린이 인상을 썼다.
“마음에 안 드는데.”
“마음에 드는 배는 이런 데 안 와.”
요나가 말했다.
아테르가 조용히 물었다.
“누가 모는 선입니까.”
요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온을 한번 봤다. 시온이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름은 아직 말 안 해.”
그는 건조하게 말했다.
“엘리아가 접속점까진 열어줬고, 그 뒤 이름은 거기서 들으라고 했으니까.”
시온이 피식 웃었다.
“끝까지 사람 못 믿는 건 여전하네.”
“그래서 아직 안 죽었지.”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때, 멀리서 아주 낮은 진동 하나가 선로를 타고 울렸다.
제국식 대형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간 화물선도 아니었다. 더 가볍고, 더 빠르고, 찾으러 오는 쪽의 속도였다.
세른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었다.
“붙었습니다.”
서린도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위에서?”
“아직은 옆쪽.”
세른이 짧게 답했다.
“관문선이 아니라 수색선입니다. 정규 추적보다 빠르게 뿌린 쪽이군요.”
요나가 욕을 삼켰다.
“빠르네.”
그 말은 단순 추적보다 더 안 좋은 뜻이었다. 누군가 이 죽은 길이 다시 밟히는 걸 이미 감지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시온은 접속선과 어둠 속 선로, 뒤쪽 진동을 번갈아 봤다.
이쯤 되면 선택지는 간단했다. 기다리면 붙고, 뛰면 갈아탈 수도 있다. 문제는 넷 모두가 같은 속도로 결심하진 않는다는 거였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박자 늦으면, 단순히 배를 놓치는 게 아니라 첫 갈아타기선 이름과 접속점 자체가 함께 더러워진다. 그러면 뒤에 남은 죽은 길 접근선도 줄줄이 닫힐 가능성이 컸다.
아테르가 짧게 말했다.
“탑승을 서두르죠.”
서린이 바로 받았다.
서린이 코웃음 쳤다.
“이런 땐 또 말 빨라.”
“지금은 빨라야 하니까요.”
시온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이 인간은 확실히 평소엔 재수 없는데, 급하면 급한 쪽으로 바로 꺾이는 타입이었다. 그 점은 솔직히 조금 쓸 만했다.
세른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탑승 순서는 시온, 서린, 각하, 저 순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요나가 눈썹을 올렸다.
“왜.”
“앞쪽 둘은 선 안 구조를 즉시 읽어야 하고, 각하는 중간에서 시야를 확보하는 편이 낫습니다. 전 마지막에 붙는 움직임을 끊겠습니다.”
시온이 짧게 웃었다.
“야, 진짜 역할분담 같아지네.”
서린이 바로 끊었다.
“좋아하지 마. 난 아직 싫어.”
“저도입니다.”
아테르가 너무 자연스럽게 그 말에 얹었다.
그 한마디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아주 짧았지만, 살기 위해 붙어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만 나오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편해서가 아니라, 지금 웃지 않으면 너무 딱딱해져서 오히려 부러질 것 같을 때 나오는.
요나는 먼저 선두로 움직였다.
폐선체 그림자 사이를 지나는 길은 좁았고, 발밑 철판은 군데군데 떠 있었다. 누가 밟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구조였다. 그는 소리 덜 나는 부분만 정확히 골라 걸었다.
시온이 그 바로 뒤를 따르며 낮게 말했다.
“저 사람 걸음은 언제 봐도 재수 없게 정확하네.”
서린이 작게 웃었다.
“그 말은 칭찬이야?”
“싫은데 인정은 하는 거지.”
뒤쪽에서 또 한 번 진동이 커졌다.
이번엔 금속 선로 위를 스치는 얇은 빛까지 보였다. 정말 얼마 안 남은 거리였다.
세른이 뒤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속도 올리십시오.”
요나가 바로 대답했다.
“지금 올리면 소리 나.”
“안 올리면 더 큰 소리가 붙습니다.”
“그래, 말은 맞네.”
접속선까지는 이제 열 걸음 남짓.
짧다면 짧았지만, 추적이 뒤따라오는 상황에선 오히려 그런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진다.
시온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마지막 몇 걸음을 거의 미끄러지듯 좁혔다.
접속선 외벽에 손을 짚는 순간, 금속 감촉이 얼음처럼 차게 전해졌다. 오래된 셔틀 특유의 묵직한 떨림이 손바닥 아래서 살아 있었다. 죽은 배는 아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안심되면서도, 이상하게 더 불안했다.
램프가 반쯤만 내려와 있었다.
시온이 먼저 뛰어올라 내부를 훑었다. 좁지만 구조는 단순했다. 앞칸 둘, 뒤 적재칸 하나, 비상 배출구는 좌측. 사람을 많이 태우는 선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빨리 넘기는 선이었다.
“와!”
그가 바로 손짓했다.
서린이 두 번째로 올라섰고, 곧 아테르가 그 뒤를 따랐다.
세른은 끝까지 뒤를 보다가 마지막에 램프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뒤쪽 어둠 사이로 수색등 하나가 길게 번졌다.
“확인!”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아주 멀진 않았다.
세른은 그쪽을 한 번 보고, 지체 없이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요나가 즉시 램프 수동 잠금을 내렸고, 접속선 외벽이 떨리며 닫히기 시작했다.
금속이 완전히 맞물리기 직전, 바깥에서 무언가가 선체 외벽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한 발 늦은 추적이 긁고 지나간 소리였다. 단순히 아슬아슬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제 이 죽은 환승층에도 살아 있는 이동선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
모두가 숨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접속선 엔진이 깊은 곳에서 한 번 낮게 울렸다.
정지해 있던 배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온은 등받이도 없는 벽에 손을 짚은 채 아주 짧게 웃었다.
“좋네.”
서린이 숨을 고르며 물었다.
“뭐가.”
“이제 진짜 가잖아.”
그 말은 가볍게 던진 것 같았지만, 방 안에선 누구도 가볍게 듣지 않았다.
중립 항구도시를 벗어나 외곽 성단 쪽으로.
지워진 이름의 뒤를 쫓아, 잘려나간 길의 첫 조각을 따라.
이제 정말로, 돌아오는 것보다 가는 쪽이 먼저가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