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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그들을 세는 손

# 35화. 그들을 세는 손 시장은 이름을 삼키던 공기에서, 누가 진짜를 들고 달아났는지 모두가 보는 공기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낡은 적재함이 옆으로 완전히 넘어지며 안쪽 금속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방금까지 값을 흥정하던 사람들까지도 본능처럼 한 발씩 물러났고, 그 틈을 가르며 작은 몸 하나가 골목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도망치는 방식부터가 익숙했다. 뛰는 게 아니라, 이미 어디에 발을 놓아야 안 잡히는지 알고 움직이는 몸. 뒤에서 쫓아오는 둘은 정반대였다. 하나는 방금 가짜 에테라이트를 늘어놓던 상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한 덩치 더 크고 화가 빠른 사내였다. 둘 다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라, 이번엔 진짜로 잃으면 안 되는 걸 놓쳤다는 얼굴이었다. “잡아.” 상인이 목이 갈라지듯 외쳤다. “그건 내 거야.” “네 거긴 개뿔.” 누군가 옆에서 비웃듯 내뱉었다. “진짜인 줄도 모르고 깔아놨으면서.” 그 한마디가 시장 바깥층 공기를 더 거칠게 뒤집었다. 시온은 그 짧은 말싸움만으로도 지금 달아나는 작은 몸 손에 들린 게 그냥 돈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짜에 섞여 있던 진짜. 아무도 대놓고 확인하진 않았지만, 몇몇은 이미 눈치챘고, 그래서 더 소란이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카엘이 먼저 움직였다. 말보다 몸이 빨랐다. 그는 도망치는 작은 몸을 잡으려는 쪽이 아니라, 뒤에서 그대로 덮치려 달려드는 더 큰 사내 쪽으로 먼저 몸을 틀었다. 각도를 비틀어 어깨를 먼저 들이받았다. 한순간 거친 숨과 욕설이 엉켰고, 둘이 같이 바닥 가까이 무너졌다가 다시 튕겨졌다. 시온은 그 움직임을 보고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 저건 물건을 가로채려는 반응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 더 크게 박살나기 전에, 몸을 끼워 넣는 반응이었다. 서린이 짧게 말했다. “시온.”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시온도 곧장 골목 쪽으로 몸을 틀었다. 뒤따라간 건 아테르였다. 아테르는 달리면서도 바닥에 흩어진 금속 조각과 먼지 속 반응을 한 번씩 훑었다. 지금 손에 들린 게 진짜 에테라이트라면, 최소한 죽은 쇳가루와는 반응 결이 다를 수 있었다. 도망치는 아이는 빠르긴 했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시장 바깥층 골목은 처음 보는 사람이 달리기엔 복잡했어도, 너무 급한 사람에겐 오히려 발목을 잡는 종류의 복잡함이었다. 아이는 이미 몇 번을 살았다는 듯 잘 꺾었지만, 오른손 안쪽으로 뭔가를 끌어안고 있어서 균형이 아주 조금씩 늦었다. 시온은 그 아주 작은 밀림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쪽 막힌다.” 그가 외쳤다. 아이는 뒤를 보지도 않고 바로 왼쪽으로 꺾었다. 그 반응이 오히려 자기 위치를 더 드러냈다. 시온이 속도를 더 올리는 순간, 앞쪽에서 필터 천 두 장이 갑자기 아래로 떨어졌다. 아이가 일부러 걸어 뜯은 거였다. 시야를 막으려는 손재주가 빨랐다. 시온은 천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려다 반 박자 늦었고, 바로 옆에서 아테르가 천 끝을 걷어냈다. “왼쪽 아래.” 아테르가 낮게 말했다. 아이가 또 꺾었다. 이번엔 폐수로처럼 움푹 꺼진 좁은 틈 아래로 몸을 미끄러뜨리듯 내려갔다. 시온은 거기까지 따라 들어가려다 순간 멈췄다. 사람이 통과할 만은 한데, 덩치가 크면 바로 걸릴 각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다른 손이 튀어나왔다. 카엘이었다. 언제 뒤쪽 사내를 떼어냈는지, 그는 이미 아래쪽 그림자 선을 크게 돌아 아이가 빠져나올 쪽으로 먼저 들어가 있었다. 그 움직임은 빠르기보다 익숙했다. 시장 바닥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어떻게 길 대신 빈틈을 타는지 아는 사람의 움직임. 아이가 그쪽에서 몸을 세우자마자, 카엘 손이 먼저 손목을 잡았다. 정확히는 손목을 꺾은 게 아니라, 더 달아나려는 방향을 한 번 죽였다. 아이는 놀랄 틈도 없이 반대손을 휘둘렀다. 손안에 들린 금속 조각 끝이 햇빛을 짧게 받았다. 크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반응이 있었다. 그냥 고철 조각이라면 안 나는 종류의 묵직한 빛이었다. 카엘이 그걸 보는 순간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시온은 그 얼굴을 보고서야 확신했다. 진짜다. 최소한 완전히 죽은 건 아니다. 그 순간 뒤쪽에서 아까 그 상인과 덩치 큰 사내가 욕설을 퍼붓으며 다시 따라붙었다. 골목 위쪽 사람들까지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고, 멀리선 누가 웃었고, 누군가는 값을 불렀다. 하즈란 바깥층 시장은 순식간에 구경꾼과 매입자와 가로채려는 손들이 한데 섞이는 공기로 변하고 있었다. 서린이 가장 늦게 도착했는데도, 가장 먼저 상황을 정리했다. “손부터 비워.” 그녀가 아이에게 낮게 말했다. 아이는 숨을 몰아쉬며 카엘을 노려봤다. 열여섯도 안 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른 편인데 눈만 이상하게 빨랐다.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라, 어디까지 우길 수 있는지와 어디서부터 포기해야 하는지를 동시에 재는 얼굴. “안 훔쳤어.” 아이가 먼저 말했다. “원래 내 손에 먼저 들어온 거야.” “좋네.” 서린이 낮게 말했다. “하즈란 애네.” 아이는 그 말에 바로 표정을 구겼다. “애 아니거든.” 카엘이 아직 손목을 놓지 않은 채 짧게 물었다. “이름.” 아이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부터 고를지, 튈 각을 다시 볼지 재는 침묵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상인이 이미 고함치며 달려오고 있었고, 시장 바깥층 눈들까지 전부 이쪽으로 몰린 상태였다. 여기서 이름조차 안 대면 더 크게 묶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빨랐던 모양이었다. “루하이.” 아이가 내뱉듯 말했다. 시온은 그 이름이 입에 붙는 방식을 한 번 들었다. 루하이. 초록색감이 묻은 이름이었다. 시장 먼지와는 결이 다른, 그래도 여기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이런 입 빠른 이름이 필요했겠다 싶은 이름. 상인이 거의 코앞까지 와서 소리쳤다. “그 손 놔. 그 도둑놈 내가 먼저 잡았어.” 서린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네 거 맞아?” 상인이 대답을 바로 못 했다. 그 짧은 멈춤만으로 충분했다. 카엘이 아주 낮게 말했다. “가짜 사이에 섞어 놓고 값만 올리려던 거지.” 상인이 눈을 부라렸다. “뭘 안다고 떠들어.” 이번엔 아테르가 입을 열었다. “죽은 금속과 반응이 다릅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적어도 저 조각은 바깥에 깔린 것들과 한 묶음이 아닙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 공기가 또 한 번 달라졌다. 누가 먼저 진짜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공기였다. 하즈란에선 그런 순간이 제일 위험했다. 아직 누구 것도 아닌데, 동시에 모두가 값을 매기기 시작하는 순간. 루하이는 그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읽은 듯했다. 카엘 손에 잡힌 채로도 눈이 계속 옆 길과 위 골조, 사람 손을 재고 있었다. 겁을 먹긴 했는데, 겁먹는 와중에도 계산이 먼저 도는 아이였다. 시온이 낮게 물었다. “네가 이게 진짜인 줄 알고 집은 거야?” 루하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온 얼굴과 아테르 손의 장비, 서린 눈, 마지막으로 카엘 손을 차례로 훑었다. “반쯤.” 그가 툭 말했다. “아니, 삼 분의 이는.” “그게 무슨 대답이야.” 시온이 말했다. “가짜들 사이에 너무 죽은 척하고 있었거든.” 루하이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럼 대체로 둘 중 하나야. 진짜거나, 누가 일부러 숨겨놨거나.” 그 말은 허풍처럼 들렸지만, 완전히 헛소리로도 안 들렸다. 카엘은 그 대답을 들은 뒤에도 손을 놓지 않았다. 다만 아까보다 힘을 조금만 뺐다. 그 미세한 변화는 시온한테만 보일 정도였지만, 분명했다. 카엘도 이 아이를 단순한 좀도둑으로만 보고 있진 않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때, 골목 바깥쪽 공기가 이상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란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말들은 여전히 오갔는데, 그 위에 한 겹 다른 침묵이 씌워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즈란 바깥층 사람들은 누가 진짜를 들고 달아났을 때도 이렇게까지 금방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웃음도, 욕설도, 값 부르는 소리도 한 박자씩 늦어지고 있었다. 서린이 먼저 그 변화를 읽었다. “좋아.”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 “이제 귀에 들어갔네.” 시온은 굳이 묻지 않았다. 누구 귀인지는 이미 알 것 같았다. 에테라이트 진짜 조각, 루하이라는 어린 손, 아카 이름을 입에 올린 외지인들, 그리고 시장 바깥층 한복판에서 터진 소란. 이 정도면 이제 바깥층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상인도 그걸 느꼈는지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못 냈다. 덩치 큰 사내는 아예 한 발 물러났고, 골목 위쪽에 고개를 내밀던 사람들도 너무 자연스럽게 못 본 척을 시작했다. 루하이는 그 변화를 보자 오히려 표정이 더 나빠졌다. “아, 젠장.” 그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서린이 바로 물었다. “왜.” 루하이는 대꾸 대신 카엘 손 쪽을 한 번 봤다. “이제 늦었어.” 그가 낮게 말했다. “이건 그냥 붙잡히는 걸로 안 끝나.” 그 말이 끝나자, 골목 입구 그림자 너머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장 바깥층의 소음이 완전히 멎진 않았는데도, 그쪽만 먼저 길이 비는 이상한 정리였다.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이 소란을 구경하러 오는 손이 아니라, 누가 값을 잘못 건드렸는지 직접 세러 오는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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