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낚아챈 뒤의 값
# 36화. 낚아챈 뒤의 값
골목 입구 그림자 너머에서 걸어 들어온 건, 소란을 말리러 온 사람의 걸음이 아니었다.
누가 값을 잘못 건드렸는지, 누가 그 값을 감당할 수 있는지 세러 오는 걸음이었다.
사람들은 먼저 길을 비켰다. 누가 소리친 것도 아닌데 그랬다. 바깥층 시장에선 드문 종류의 정리였다. 값이 올라갈 땐 더 몰려드는 법인데, 지금은 오히려 한 발씩 물러났다. 웃음과 욕설이 완전히 꺼진 건 아닌데도, 그 위에 한 겹 더 얇은 침묵이 씌워지는 식이었다.
그 한가운데로 나심이 걸어 들어왔다.
서두르지도, 일부러 느리게 굴지도 않는 걸음이었다. 그런데도 이쪽이 숨을 한 번 더 고르게 만드는 쪽의 속도였다. 아까 외곽 시장 바깥에서 봤던 얼굴과 다를 건 없는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걸 이미 알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골목 안쪽 상황을 한 번 훑었다.
카엘 손에 잡힌 루하이,
루하이 손 안의 금속 조각,
얼어붙은 상인,
뒤로 물러난 구경꾼,
그리고 그걸 전부 가운데 두고 서 있는 시온 일행.
그 짧은 훑음만으로도 나심은 이미 끝까지 계산을 마친 얼굴이었다.
“들어오자마자 큰 걸 건드렸네.”
그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서린은 바로 받지 않았다. 대신 루하이 손 안 조각을 한 번 보고, 나심 얼굴을 봤다.
“네 거야?”
나심은 웃었다.
“하즈란에서 제일 비싼 질문은 늘 그거야.”
그가 말했다.
“누구 거냐.”
카엘이 아주 낮게 말했다.
“그럼 네 것도 아니라는 소리네.”
나심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검은 옷, 넌 들은 것보다 먼저 냄새 맡는 타입이구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싫지 않네.”
루하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목을 한 번 틀었다. 카엘 힘이 아주 미세하게 풀린 순간을 읽고, 다시 튀어 나갈 각을 본 거였다. 근데 카엘 손이 더 빨랐다. 이번엔 억지로 꺾지 않고, 반 걸음만 비틀어 아이 몸 방향 자체를 죽였다.
루하이가 이를 악물었다.
“안 뛴다니까.”
“방금 뛰려 했잖아.”
시온이 말했다.
“그건 습관이야.”
루하이가 툭 답했다.
아테르가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좋지 않은 습관이군요.”
루하이는 그 말을 듣고도 민망해하기보다, 오히려 아테르 얼굴을 빤히 봤다. 평가당하는 데 익숙한 애가 아니라, 평가하는 사람 표정을 먼저 읽는 데 익숙한 애 같았다.
나심은 그 짧은 공방이 다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웃는 얼굴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주도권을 쥐는지, 누가 먼저 감정을 드러내는지, 루하이가 어디까지 튈 수 있는지 전부 한꺼번에 보는 쪽이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조각, 바깥에서 굴리기엔 좀 값이 커.”
그는 루하이 손 안 에테라이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가짜 사이에 깔아 놓은 놈이 멍청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잡은 손이 똑똑하단 뜻은 또 아니지.”
루하이가 바로 쏘아붙였다.
“그럼 네가 똑똑하단 뜻은 되나?”
골목 안 공기가 아주 짧게 멎었다.
상인은 얼굴이 사색이 됐고, 구경하던 몇몇은 아예 시선을 돌렸다. 하즈란 바깥층에서도 이런 입은 귀한 값이 붙을 수 있었다. 살아남으면 재밌고, 잘못 걸리면 바로 부러지는 종류의 입.
나심은 그런데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니, 네 운이 생각보다 좋네.”
그가 말했다.
“아니면 누가 계속 끼어들어 줬거나.”
그 시선은 잠깐 카엘에게 닿았다.
시온은 그 짧은 왕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나심은 이미 루하이가 혼자 움직인 게 아니라는 걸 읽고 있었다. 이 소란이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니라, 외지인들과 시장 바깥층 값이 한 번에 엮인 사건이라는 것도.
서린이 짧게 물었다.
“그래서 결론은.”
“결론은 간단하지.”
나심이 말했다.
“그 조각이 진짜라면, 밖에서 이러고 서 있을수록 점점 더 많은 손이 붙어.”
“네 손도 포함해서?”
서린이 물었다.
나심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하즈란에서 진짜는 발견한 손보다, 끝까지 들고 있는 손 쪽으로 기우니까.”
루하이가 그 말을 듣자 눈빛이 확 달라졌다.
겁보다 짜증이 먼저 올라온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잡았잖아.”
그가 말했다.
“그 상인 손엔 죽은 것밖에 없었고, 이건 내가 먼저 골랐어.”
“훔친 거지.”
상인이 뒤늦게 소리쳤다.
“네가 진짜인 줄도 몰랐으면서?”
루하이가 바로 되받았다.
“조용.”
서린이 낮게 잘랐다.
그 한마디에 둘 다 잠깐 입을 다물었다. 상인은 억울해서 다물었고, 루하이는 더 떠들면 자기 값이 오히려 깎일 수 있다는 걸 읽고 다물었다.
아테르가 에테라이트 쪽을 보며 말했다.
“완전히 죽은 물질은 아닙니다. 적어도 판별 가치는 있습니다.”
시온이 그 말을 받았다.
“그럼 우린 이걸 그냥 못 넘겨.”
나심은 그제야 시온을 조금 더 길게 봤다.
“에테라이트 때문에?”
그가 물었다.
시온은 숨기지 않았다.
“우리 배가 죽기 직전이야.”
그가 낮게 말했다.
“가짜 사다가 붙일 여유 없어.”
나심은 웃었다. 그 웃음이 아까보다 아주 조금 진짜에 가까워졌다. 사람 하나가 뭘 원하는지, 왜 급한지, 그래서 어디까지 가격을 올릴 수 있는지가 전부 보일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이제야 말이 사람 말처럼 들리네.”
그가 말했다.
카엘이 옆에서 아주 낮게 말했다.
“넌 아까부터 계속 값만 보네.”
나심이 고개를 아주 작게 기울였다.
“여긴 하즈란이잖아.”
그가 답했다.
“값 안 보고 뭐 보는데.”
그 말은 틀리지 않았고, 그래서 더 불쾌했다.
시온은 그 짧은 공방 끝에서 다시 아카 쪽 이름을 떠올렸다. 아카는 여기서도 같은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름이 아니라 값으로, 소문이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에테라이트와 아카가 같은 선 아래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루하이는 여전히 카엘 손에 붙잡힌 채였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너희도 그 이름 찾는 거지.”
그가 시온 쪽을 보고 말했다.
짧은 정적.
서린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무슨 이름.”
그녀가 물었다.
루하이가 입꼬리를 아주 조금만 올렸다.
“아까 다 들었거든.”
그가 말했다.
“아카.”
카엘 손이 다시 아주 조금 강해졌다.
“아는 게 있냐.”
시온이 묻자, 루하이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이번엔 진짜로 계산했다. 여기서 어느 정도까지 말해야 자기가 덜 팔리는지, 어느 정도까지 숨겨야 더 오래 살아남는지. 머리가 빠른 아이 특유의 침묵이었다.
근데 나심이 그 침묵 위에 먼저 말을 얹었다.
“밖에서 이름 오래 붙들지 마.”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에테라이트보다 더 비싸게 붙는 이름이니까.”
그 말이 떨어지자, 루하이 표정이 아주 잠깐 변했다. 짜증, 경계, 익숙함이 섞인 표정. 이 아이도 그 이름이 함부로 굴러다니는 게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온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안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이 아이는 뭔가 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골목 바깥쪽에서 또 다른 침묵이 한 겹 더 얹혔다.
이번엔 나심조차 먼저 말을 멈췄다.
사람들이 한 발 더 물러났고, 상인은 아예 고개를 숙였고, 덩치 큰 사내는 방금까지 화를 내던 얼굴에서 힘이 빠졌다. 같은 조용함인데 아까와는 결이 달랐다. 바깥층 시장이 알아서 숨을 죽이는 조용함.
나심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진짜 세는 손이 오네.”
그가 말했다.
시온은 그 말 뜻을 묻지 않았다.
누가 오는지, 어째서 다들 저 반응인지, 이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골목 입구 그림자 너머에서, 검은 천 아래 단단한 팔 하나가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사람보다 통제를 먼저 믿는 눈이 천천히 이쪽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