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사람들이 삼키는 이름
# 34화. 사람들이 삼키는 이름
하즈란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건, 멀리 보이는 시장을 향해 곧장 걷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곧장 들어가면 외지인 티가 너무 진하게 났다. 선체 그림자를 벗어나자마자 넷은 속도를 줄였다. 발을 빨리 옮기는 것보다, 이 행성의 바람과 폐선체 그림자에 먼저 몸을 맞추는 쪽이 중요했다. 하즈란은 먼저 말을 거는 장소가 아니라, 먼저 드러난 쪽부터 값을 매기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서린이 가장 앞에서 걸었다. 시온은 반걸음 뒤를 붙었고, 아테르는 열린 시야보다 발아래 남은 흔적과 금속 표면에 붙은 잔향을 더 자주 봤다. 카엘은 제일 뒤에서, 누가 뒤를 밟는지보다 누가 먼저 이쪽을 보고 있는지를 읽는 쪽에 가까웠다.
모래는 바깥에서 봤을 때보다 더 무거웠다. 발이 빠지는 종류의 부드러움이 아니라, 쇳가루와 재가 섞여 오래 눌린 바닥 같았다. 걸을 때마다 부드럽게 흩어지기보다, 마른 가루가 신발 아래에서 얇게 긁혔다. 폐선체 그림자 안쪽은 그나마 낫지만, 한 번 볕으로 나오면 열이 바로 옷감을 뚫고 올라왔다.
한참 말 없이 걷던 끝에, 시온이 낮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조용해?”
카엘이 짧게 답했다.
“조용한 게 아니야.”
그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릴 먼저 보고 있는 거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온도 느꼈다.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폐선체 사이가 사실은 너무 조용해서 사람 티를 안 냈다는 걸. 반쯤 내려앉은 갑판 틈, 뜯긴 적재함 그림자, 검게 탄 외벽 판 아래쪽마다 시선이 있었다. 대놓고 나타나지 않을 뿐, 누가 어디서 들어왔고 뭘 들고 왔는지 재고 있는 눈들. 하즈란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라, 먼저 값을 매길 때까지 침묵하는 곳이었다.
서린이 아주 낮게 말했다.
“앞만 봐.”
시온은 그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럴 땐 다 안다는 표정을 짓는 쪽이 더 위험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길이라고 부를 만한 흔적이 나타났다. 처음엔 폐선체 그림자 사이에 반복해 눌린 발자국 정도였는데, 그 다음엔 바퀴 자국이 겹쳤고, 조금 뒤엔 쇠판을 깔아 놓은 짧은 구간까지 나왔다. 정식 도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이 자꾸 같은 방향으로 드나들며 만든 선이었다.
아테르가 바닥 쪽을 보며 말했다.
“운반 흔적입니다.”
“뭐가 오간 것 같아?”
시온이 물었다.
“무게 있는 것.”
아테르가 짧게 답했다.
“그리고 자주.”
카엘이 덧붙였다.
“사람도.”
시온은 그 말을 흘리지 않았다. 하즈란에선 부품, 물, 연료, 사람값이 다 같은 선 위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여기선 누가 물건이고 누가 손님인지조차 오래 지나야 구분될 것 같았다.
길 끝에 처음 나타난 건 시장이라기보다, 시장의 바깥층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찢긴 천막 조각이 금속 골조 사이에 어설프게 걸려 있었고, 오래된 적재함 옆면에 급하게 이어 붙인 물통과 연료통이 바닥 가까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고철을 갈아 작은 판을 만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필터 천을 널어 말리고 있었다. 겉보기엔 전부 임시 같았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버틴 장소처럼 보였다. 여기선 제대로 된 것보다, 제대로 안 보이는 쪽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처럼.
가장 먼저 말을 건 건 아이였다.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금속 부스러기를 담은 통을 옮기다 말고 넷을 빤히 봤다. 외지인 티를 숨긴다고 숨겼어도, 완전히 지워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는 시온 얼굴과 서린 쪽 옷차림, 아테르 손에 든 장비, 마지막으로 카엘 품 안쪽을 차례로 훑더니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또 왔네.”
시온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
“뭐가.”
그가 물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등을 돌려 안쪽 천막 쪽을 봤다. 바로 다음 순간, 거기 있던 여자가 아이 팔을 잡아당겼다.
“보지 마.”
그녀가 낮고 빠르게 말했다.
“외지인 쳐다보다 엮이면 네 값부터 깎여.”
말은 아이한테 했지만, 시선은 서린 쪽을 짧게 스쳤다.
서린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 여자와 아이를 지나쳤다. 시온도 그 리듬을 깨지 않았다. 이런 데선 멈춰 서서 묻는 순간부터 이미 바가지가 시작될 것 같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냄새가 확 달라졌다.
모래와 쇳가루 냄새 사이에, 오래 끓인 기름 냄새와 사람 땀, 축축하게 젖은 여과포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시장이 가까워졌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외곽이지만, 여기부터는 물건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돈이 되는 구역이었다.
카엘이 아주 낮게 말했다.
“저기부터는 말 한마디도 값 붙는다.”
“네가 그런 말 하니까 더 싫네.”
시온이 중얼거렸다.
카엘은 대꾸 대신 아주 짧게 입꼬리만 움직였다.
그 짧은 변화가 이상하게도 시온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은 지금 이 장소를 낯설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주 익숙하게 읽고 있었다.
서린이 시야 앞쪽을 보며 말했다.
“정보 먼저.”
시온도 곧장 받았다.
“에테라이트랑 아카?”
“둘 다.”
서린이 말했다.
“근데 급한 건 에테라이트. 배 못 뜨면 이름 찾아도 다 끝이야.”
아테르가 그 말 사이를 낮게 메웠다.
“질문은 분리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같은 입에서 둘 다 묻는 순간, 값이 뛰거나 묶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에테라이트를 찾는 외지인, 정체 모를 이름 하나를 같이 찾는 외지인. 둘 중 하나만으로도 눈에 띄는데 둘을 한꺼번에 묻는 순간, 여기선 거의 스스로 목에 표식을 거는 셈이 될 수 있었다.
서린이 짧게 정리했다.
“좋아. 에테라이트는 내가 먼저 건드린다. 시온, 넌 이름 쪽 반응만 봐.”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테르는?”
“둘 다 사이에서 틀린 말 나오면 끊어.”
서린이 답했다.
카엘은 더 묻지도 않고 주변 부스와 사람 손을 훑고 있었다. 누가 물건을 직접 만지는지, 누가 말만 하고 뒤로 빠지는지, 누가 여기 주인이 아닌데 주인인 척하는지 같은 것들. 시장은 처음이 아니라는 사람의 눈이었다.
첫 번째로 걸린 건 물장수 비슷한 사내였다.
그는 넷이 다가오는 걸 보자마자 웃었다. 반가워서 웃는 얼굴이 아니라, 어디까지 받을 수 있을지 머릿속에서 먼저 계산이 끝난 웃음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그가 말했다.
“목 말라 보여. 물부터 사. 하즈란에선 급한 사람이 제일 비싸게 사거든.”
서린이 멈춰 섰다.
“에테라이트 본 적 있어?”
사내 웃음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많지.”
그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가루도 있고, 부스러기도 있고, 반쯤 죽은 것도 있고. 값만 맞으면 못 구할 건 없어.”
서린은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사내 눈을 잠깐 보다 낮게 말했다.
“진짜도?”
이번엔 사내가 먼저 침묵했다.
웃음은 남아 있었지만, 눈은 조금 달라졌다. 이건 시장 초짜가 아무 이름이나 주워들은 게 아니라, 적어도 뭘 묻고 있는지는 아는 손이라는 걸 읽은 표정이었다.
“진짜를 찾는다고?”
그가 되물었다.
“그럼 넌 돈 말고도 다른 걸 내놔야 할 텐데.”
카엘이 옆에서 아주 낮게 말했다.
“바가지다.”
사내 귀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거기 검은 옷.”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즈란 와서 바가지 아닌 게 어딨어.”
시온은 그 틈에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에테라이트 얘기가 오가는 동안, 주변 사람들 반응은 둘로 갈렸다. 하나는 그냥 값 냄새를 맡는 쪽. 다른 하나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아예 못 들은 척 더 멀어지는 쪽. 진짜 귀한 물건 이름이거나, 엮이면 피곤한 이름일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시온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름 하나도 좀 묻자.”
서린 시선이 아주 짧게 이쪽으로 왔다가 지나갔다. 막진 않았다. 시온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아카.”
사내 표정이 이번엔 더 분명하게 멈췄다.
아주 찰나였지만 분명했다. 모른다는 얼굴을 만들기 전에, 먼저 알고 있다는 표정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보다 빨랐던 건 옆 골목 쪽에서 튀어나온 아이 목소리였다.
“붉은 불씨의 아카?”
바로 다음 순간, 다른 손이 아이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낮고 거친 목소리였다.
사람들 시선이 잠깐에 한 군데로 모였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흩어졌다. 하즈란답게 노골적으로 놀라지도, 대놓고 반응하지도 않았다. 대신 다들 너무 빨리 못 들은 척했다. 그게 오히려 더 확실한 반응이었다.
시온은 그 짧은 침묵 안에서 알 수 있었다.
있다.
적어도 이름은 헛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선 함부로 입에 올리면 안 되는 이름이다.
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네.”
그녀가 낮게 말했다.
“이제 모른다는 소린 못 하겠네.”
물장수 사내는 억지웃음을 다시 걸쳤다.
“이름 하나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가 말했다.
“하즈란엔 이름보다 값이 먼저야.”
“그건 네 쪽 사정이고.”
서린이 잘랐다.
“우린 어디서 그 값을 매기는지만 찾으면 돼.”
사내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런데 이번 웃음엔 아까 같은 가벼움이 없었다. 외지인을 뜯어먹는 즐거움보다, 괜히 깊은 이름에 손댔다가 자기 값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불편함이 먼저 들어온 얼굴이었다.
아테르가 아주 낮게 말했다.
“이름을 피합니다.”
“에테라이트는 팔고 싶어 하고.”
시온이 중얼거렸다.
카엘이 짧게 말했다.
“둘 다 같은 손 밑에 있을 수도 있지.”
시온은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받지 않았다. 지금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가 아니라, 시장이 어디서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지 보는 단계였다.
그때, 시장 한복판보다 조금 바깥쪽에서 짧은 고함 하나가 터졌다.
“야, 그거 놔.”
이쪽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튀었다. 낡은 적재함 하나가 쓰러지는 소리, 누가 욕설을 삼키듯 내뱉는 목소리, 그리고 구경꾼들이 한 박자 늦게 물러나는 기척.
시온은 그 짧은 소란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시장 바깥층 공기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이름을 삼키던 공기에서,
이제는 누가 진짜를 잘못 건드렸는지 모두가 보는 공기로.
서린도 이미 같은 걸 읽은 눈이었다.
“좋아.”
그녀가 아주 낮게 말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