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소음을 자르는 손
# 37화. 소음을 자르는 손
하룬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시장 바깥층에 남아 있던 소란은 완전히 꺼진 건 아닌데도 더 이상 이쪽 중심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직 숨을 크게 쉬었고, 누군가는 욕설을 삼키고 있었고, 누군가는 값이 날아갔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든 소리가 하룬 시야 바깥으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그는 대단히 천천히 걷는 것도 아니었고, 일부러 위협적인 걸음도 아니었다. 그냥 들어왔을 뿐인데, 누구도 먼저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종류의 손이었다.
시온은 그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나심이 값을 매기고 길을 거르는 얼굴이라면,
이쪽은 누가 여기서 더 떠들 수 있는지, 누가 여기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를 정하는 손이었다.
하룬은 골목 안으로 두 걸음 들어온 뒤에야 멈췄다.
검은 천 아래 드러난 팔은 마른 편인데도 단단했고, 모래와 열에 오래 긁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얼굴은 웃지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신 이쪽을 한 번 쓸어보는 것만으로도 누가 얼마만큼 위험한지부터 먼저 재는 눈이었다.
그 시선이 먼저 닿은 건 루하이 손 안 조각이었다.
그 다음은 카엘 손,
그 다음은 시온,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서린이었다.
아테르는 아예 숨도 줄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룬이 입을 열었다.
“놔.”
짧고 낮은 목소리였다.
카엘은 곧바로 손을 풀지 않았다.
“누구한테.”
그가 물었다.
짧은 정적.
골목 바깥에서 누군가 작게 숨을 삼켰다. 나심은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시선은 아주 잠깐만 카엘 쪽으로 내려앉았다. 이건 재밌는 대화가 아니라, 하즈란 바깥층 사람들이 오래 안 보고 싶어 하는 종류의 시작이었다.
하룬은 대답 대신 루하이 손목을 붙잡은 카엘 손을 한 번 봤다.
“거기서부터.”
그가 말했다.
카엘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시온은 그 짧은 얼굴에서 이 사람이 싸움을 피하는 쪽보다, 누가 먼저 선을 넘는지 끝까지 보고 판단하는 쪽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구조물 안에서도 그랬고, 조금 전 골목에서도 그랬다. 카엘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바로 부딪히지도 않는다. 딱 한 선만 더 보면 움직이는 사람이다.
서린이 먼저 끼어들었다.
“우리가 먼저 주운 건 아니야.”
그녀가 낮게 말했다.
“근데 가짜 사이에 섞여 있던 진짜를 누가 먼저 알아봤는지는 이제 다들 본 것 같네.”
하룬 시선이 그녀 쪽으로 갔다.
“그래서.”
“그래서 밖에서 칼값 붙일 이유는 없다는 거지.”
서린이 답했다.
“이 정도 값이면, 적어도 누가 누구를 뜯는지 정리는 하고 움직여야 할 거 아냐.”
나심이 옆에서 아주 작게 웃었다. 말맛 자체는 거칠었지만, 서린이 하룬한테 곧장 덤비는 대신 이 바닥 논리로 말을 던졌다는 걸 알아차린 웃음이었다.
하룬은 그런데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말은 다 그렇게 하지.”
그가 말했다.
“진짜를 잡은 손은 늘 자기가 먼저 안다고 생각하니까.”
루하이가 그 말을 듣고 바로 내뱉었다.
“내가 먼저 알았거든.”
카엘 손이 다시 조금 세졌다.
“입.”
그가 짧게 말했다.
“아프거든.”
루하이가 쏘아붙였다.
“안 도망간다니까.”
“방금도 그 말 했어.”
시온이 중얼거렸다.
그 짧은 말에 골목 안 공기가 아주 조금만 느슨해졌다. 완전히 풀린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전부가 칼날 하나에만 매달리던 순간은 지나간 느낌이었다. 하룬도 그 미세한 변화를 느낀 듯했다. 그렇다고 풀어주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차갑게 상황을 정리하는 쪽이었다.
“조각.”
그가 루하이 쪽을 보고 말했다.
“내놔.”
루하이는 그 한마디에 표정이 확 굳었다.
아까까지는 짜증과 허세가 먼저였는데, 이번엔 그 밑에 깔린 진짜 경계가 드러났다. 이건 돈 몇 푼 뜯기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적어도 이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싫어.”
그가 낮게 말했다.
하룬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내려갔다.
시온은 그 순간 위험이 어디서 커지는지 정확히 느꼈다. 고함이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짧은 말만 남을 때. 이쪽 바닥에서 진짜 위험한 손은 늘 그렇게 움직인다.
카엘이 먼저 말을 얹었다.
“이건 얘 손에서 바로 뺏으면 더 시끄러워진다.”
하룬이 그를 봤다.
“그래서.”
“누가 먼저 값 볼 건지 정하자는 거지.”
카엘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 다들 보고 있잖아.”
하룬은 그 말 끝에서 처음으로 주변을 한 번 더 봤다.
골목 바깥에 선 사람들, 못 본 척하지만 다 듣고 있는 귀들, 방금까지 진짜라고 떠들었던 상인, 누가 손을 잘못 댔는지 기억하고 있을 바깥층 눈들. 하룬은 바깥층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는 있어도, 이 정도로 다 퍼진 소란을 아무 흔적 없이 자를 수는 없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나심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밖에서 너무 오래 붙들면 값만 더 뛰어.”
그가 말했다.
“그리고 저 아이 입도 더 길어질 거고.”
루하이가 바로 받아쳤다.
“원래 길거든.”
이번엔 시온도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 아테르조차 아주 잠깐 시선을 내리며 숨을 고르는 기색을 보였다. 이런 타이밍에도 입이 먼저 나가는 애. 그게 루하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식과 이상하게 잘 맞았다.
하룬은 웃지 않았다.
대신 아주 낮게 말했다.
“네가 들고 도망친 게 뭔진 아냐.”
루하이는 잠깐 침묵했다.
“반쯤.”
그가 툭 말했다.
“아니, 삼 분의 이는.”
시온이 거의 반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까와 같은 대답이었다. 근데 하룬은 그 말을 허풍으로만 듣지 않은 얼굴이었다.
“설명해.”
그가 말했다.
루하이는 카엘 손에 잡힌 채로도 눈을 굴렸다. 지금 여기서 뭘 말하면 살고, 뭘 말하면 바로 뺏길지 계산하는 눈이었다.
“가짜들 사이에 너무 죽은 척하고 있었어.”
그가 말했다.
“그럼 보통 둘 중 하나야. 진짜거나, 누가 일부러 숨겨놨거나.”
하룬은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나심이 대신 작게 웃었다.
“역시 입은 길어.”
“맞는 말이잖아.”
루하이가 툭 내뱉었다.
하룬은 이번엔 루하이가 아니라 시온 쪽을 봤다.
“너희도 그거 보러 온 거냐.”
시온은 잠깐 망설이지 않았다.
“에테라이트가 필요해.”
그가 말했다.
“우리 배가 죽기 직전이야.”
“그래서 저 이름도 찾고.”
하룬이 말했다.
짧은 정적.
시온은 그가 어떤 이름을 말하는지 묻지 않았다.
아카.
하룬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선 이름을 숨기는 쪽보다, 숨긴다는 사실 자체를 읽는 손이 더 빨랐다.
서린이 아주 낮게 말했다.
“밖에서 애 입 막던 반응도 봤고, 이 시장이 그 이름을 어떻게 삼키는지도 봤어.”
하룬은 그 말에 아주 얇게 눈을 좁혔다.
“그래서 더 늦었지.”
그가 말했다.
시온은 그 문장이 조금 전 골목 끝에서 스쳤던 느낌보다 더 정확하게 들어오는 걸 느꼈다. 늦었다는 건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었다. 이미 너무 많은 걸 동시에 건드렸다는 뜻에 가까웠다. 에테라이트, 아카, 루하이, 그리고 시장 바깥층 한복판에서 난 이 소란까지. 이제는 그냥 외지인 넷과 좀도둑 하나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다.
나심이 아주 부드럽게 결론을 냈다.
“좋아. 그럼 밖에서 더 깎지 말고, 안쪽에서 값 보자.”
카엘이 그 말을 듣고 하룬을 봤다.
“우리까지?”
하룬은 아주 짧게 답했다.
“다 같이.”
상인이 그제야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잠깐, 그건 제—”
하룬 눈길이 한 번 스치자, 상인은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 짧은 장면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즈란 바깥층에서 누가 값을 떠들 수 있고, 누가 입을 닫아야 하는지. 하룬은 말보다 그 침묵으로 정하는 사람이었다.
루하이는 작게 욕설을 삼켰다.
“아, 진짜 재수 없네.”
나심이 웃었다.
“아니지.”
그가 말했다.
“여기서부터가 운이 갈리는 데야.”
카엘은 한참 뒤에야 루하이 손목에서 힘을 조금 뺐다. 놓아준 건 아니었다. 다만 이제 튀어도 바깥층 골목까지는 못 간다는 걸 서로 아는 수준의 힘이었다.
서린은 시온보다 먼저 움직였다.
“가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 더 물어봤자 다 밖으로 새.”
시온도 그 말이 맞다고 느꼈다.
에테라이트 진짜 조각 하나,
아카라는 이름 하나,
루하이라는 입 빠른 손 하나.
이 셋이 같은 자리에서 엮인 순간부터, 하즈란은 이미 이들을 바깥층 바닥에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하룬이 몸을 돌렸다.
골목 바깥으로 다시 이어지는 그림자 선이 아니라, 시장 더 안쪽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통로 쪽이었다. 나심은 그 옆에서 여전히 웃고 있었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지나갈 길을 너무 자연스럽게 비웠다.
시온은 그 길로 들어서기 직전, 한 번만 뒤를 돌아봤다.
바깥층 시장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근데 이제 그 시끄러움은 이쪽 일이 아니라, 이쪽 일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찌꺼기처럼 느껴졌다. 진짜 값은 이제 안쪽에서 매겨질 거라는 걸 모두가 아는 소음.
그리고 그 안쪽 어딘가에는,
아카도 있을 거였다.
시온은 재킷 안쪽 종이를 한 번 더 눌렀다.
`하즈란`
`아카`
두 단어는 여전히 설명이 없었다.
대신 이제는 분명해지고 있었다.
이 이름은 찾는다고 끝나는 이름이 아니라,
잘못 찾으면 그대로 먹히는 이름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