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값이 외쳐지는 질주
# 48화. 값이 외쳐지는 질주
루하이가 절반짜리 정답을 받아든 뒤, 중정 공기는 오히려 더 살아났다.
완전히 맞히는 것보다,
애매하게 맞히는 쪽이
판을 더 오래 끓인다.
시온은 그걸 곧장 느꼈다. 방금 전까지 눌려 있던 웅성거림이 이번엔 더 노골적으로 퍼졌다. 사람들은 루하이의 반쪽짜리 성공을 비웃는 동시에, 이제 다음 판이 어디까지 커질지 계산하고 있었다. 흉내에도 값이 붙고, 완전한 실패가 아니면 더 큰 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이건 단순한 선별 놀이가 아니다. 지금까지 중정에 모인 시선과 돈, 소문과 기대를 한꺼번에 더 크게 밀어 올리기 좋은 예열 라운드였다.
중앙의 진행자는 루하이를 오래 세워 두지 않았다. 절반은 맞았다는 말, 흉내에도 값이 있다는 말만 남기고 바로 옆으로 물렸고, 검은 천 받침 셋도 조용한 손들에 의해 곧장 치워졌다. 이 바닥은 정답을 오래 붙들지 않는다. 리듬이 죽기 전에 다음 판돈을 올리는 법을 더 잘 안다.
루하이는 내려오며 잔뜩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일 열받는 종류네.”
이번엔 서린이 낮게 받았다.
“완전히 틀린 게 아니니까.”
루하이는 입술을 삐뚤게 움직였다. 반박하진 못했다. 완전한 실패였다면 욕 한 번 하고 끝났을 텐데, 지금은 자기가 제대로 냄새를 맡긴 했다는 게 더 남아 있었다.
그때, 안쪽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자히르가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중정 공기가 한 번에 가라앉았다.
아까까지 판을 굴리던 사람은 중앙의 진행자였고, 규칙을 웃으며 번역하던 건 나심이었고, 손을 정리하던 건 하룬이었다. 근데 자히르가 직접 움직이는 순간, 시온은 지금부터가 아까까지와 전혀 다른 단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결과에 말만 얹는 사람이 아니라, 판 자체를 더 크게 뒤집는 사람이었다.
자히르는 중앙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대신 안쪽 높은 금속 발판 끝에 서서 중정을 내려다봤다.
“눈은 다 봤다.”
그가 낮게 말했다.
“이제 손을 보자.”
그 작은 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멀리까지 또렷하게 갔다.
주변 웅성거림이 스스로 죽었다.
자히르는 시선을 천천히 움직였다. 시온, 서린, 아테르, 카엘, 루하이, 나히라 곁 아카. 그리고 마지막엔 중정 바깥 어두운 통로 하나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시온은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천막 틈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 둘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한지우였다.
그리고 세른이었다.
시온 숨이 먼저 멎었다.
한지우는 살아 있었다. 다친 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어도 걷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먼지와 열에 절여진 얼굴이었고, 억지로 끌려와 짜증이 한껏 눌린 표정이었지만, 눈은 아직 죽지 않았다. 세른도 마찬가지였다. 창백해 보였지만 흐트러지진 않았고, 오히려 이 자리 구조를 들어오자마자 먼저 읽는 눈이었다. 둘 다 포박된 건 아니었다. 대신 스스로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가 이미 정해진 사람들처럼, 양옆에 붙은 손들과 함께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시온은 그 순간, 자히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 번 더 깊게 이해했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한지우와 세른을 몰랐던 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잡아 둘 만큼만 잡아 뒀고,
가장 값이 크게 붙는 순간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거다.
서린이 아주 낮게 욕처럼 숨을 뱉었다.
“미친.”
아테르 눈빛도 처음으로 아주 분명하게 흔들렸다.
카엘은 다른 선에 서 있다가도 바로 몸을 틀었고, 루하이는 입을 조금 벌린 채 세른을 봤다. 아카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시온은 그녀 시선이 한지우가 아니라 세른 쪽에서 한번 멈추는 걸 놓치지 않았다. 계산하는 손. 읽는 손과는 다르지만, 판을 구조로 읽는 손.
나심이 아주 얇게 웃었다.
“이제야 팀이 맞네.”
그가 중얼거렸다.
자히르가 말했다.
“배를 살리고 싶었지.”
그는 시온 일행이 아니라 중정 전체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에테라이트가 필요했고, 이름을 확인할 손도 필요했고.”
그는 아주 잠깐 한지우와 세른 쪽을 봤다.
“그러면 손이 둘 더 있어야 맞아.”
하즈란 바깥에서 굴러들어온 외지인 네 사람을, 자히르가 이제 자기 판 규칙에 맞게 다시 짝지어 놓는 순간이었다.
한지우는 시온을 보자마자 아주 짧게 눈을 좁혔다.
살아 있냐, 다치진 않았냐,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
그 짧은 눈길 하나에 다 들어 있었다.
시온도 대꾸 대신 아주 미세하게 턱을 움직였다.
살아 있다.
일단은.
세른은 카엘 쪽을 한번, 중앙 중정 구조를 한번에 쓸어보더니 아주 작게 말했다.
“생각보다 크게 열렸네.”
루하이가 거의 반사적으로 코웃음 쳤다.
“너도 잡혀 왔으면서 침착한 척 잘하네.”
세른은 그 말에도 표정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잡혀 온 것치곤 늦게 공개됐지.”
그가 말했다.
“그럼 이유가 있는 거고.”
자히르는 그대로 다음 문장을 이었다.
“오늘 밤 증명은 중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
“밖으로 뻗은 길에서 난다.”
그와 동시에, 원형 중정을 둘러싼 바깥 선체 벽 곳곳에서 금속 걸쇠 풀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철컥.
철컥.
철컥.
모두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했다.
중정을 감싸던 벽 일부가 열리며,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외곽 구역이 드러났다. 붉은 천막 지대 바깥에 붙은 활주선, 모래 바람이 얇게 스치고 지나가는 평원 가장자리, 반쯤 무너진 선체 골조가 이어진 고지대, 열기층 아래 유리화된 지면이 멀리서 어둡게 번들거리는 구획까지. 하즈란 외곽 전체가 하나의 경기장처럼 이어져 있었다.
시온은 그걸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이건 그냥 판이 아니다.
원래부터 하즈란이 사람들한테 보여 주던 대표 경기다.
중앙의 진행자가 앞으로 나왔다.
“불씨 질주.”
그가 외쳤다.
“오늘 밤 증명의 이름은 그거다.”
이번엔 군중이 확실하게 들끓었다.
아까까지는 눈으로만 값을 재고 있었는데, 지금은 몸부터 먼저 앞으로 쏠렸다.
이 반응은 설명보다 더 분명했다. 이게 원래 하즈란 사람들이 기다리던 본게임이었다.
중앙 진행자가 손을 뻗자, 붉은 천막 바깥 그늘 아래 가려져 있던 사막 스키프들과 활주 기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낮고 길게 뻗은 부양판, 모래를 얕게 가르는 선체, 뜯어 고친 엔진 하우징, 천 조각과 금속 조임쇠로 덕지덕지 살려낸 외장. 어떤 건 거의 폐품 같았고, 어떤 건 날렵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어떤 건 대놓고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것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전부 한 번쯤은 죽었어야 할 기체들인데,
억지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들이었다.
한지우 눈빛이 처음으로 확실하게 바뀌었다.
짜증과 경계 위로, 조종사가 기체를 보는 본능이 먼저 올라왔다. 저건 좋은 기체냐 나쁜 기체냐보다, 어디가 죽었고 어디를 살릴 수 있느냐를 먼저 읽는 눈이었다.
진행자가 외쳤다.
“열둘이 사막 스키프를 탄다.”
그가 말했다.
“같은 불씨를 노린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선은 제각각이다.”
높은 금속판 위로 깃발들이 차례로 올라갔다.
익숙한 현지 팀 이름들이 군중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흐마르단 정규 팀.
독립 해체장 팀.
밀수꾼 팀.
전년도 우승팀.
무모한 뜨내기 팀.
환호와 야유가 한꺼번에 뒤섞였다.
이건 즉석에서 만든 판이 아니었다. 원래 열릴 경기였고, 자히르는 여기에 외지인 둘의 팀을 가장 비싼 패처럼 끼워 넣은 거였다.
진행자가 세 방향을 가리켰다.
“구역은 셋.”
그가 말했다.
“붉은 활주대. 폐선체 잔해 지대. 열기층 불씨 지대.”
시온은 그 말이 떨어질 때마다 눈앞 경기장이 다르게 보이는 걸 느꼈다.
붉은 활주대는 재시장 외곽 모래 평원으로 빠지는 초반 구간이었다. 속도를 못 내면 바로 뒤처지고, 속도만 믿으면 옆 기체에 갈려 나갈 자리.
폐선체 잔해 지대는 길처럼 보여도 길이 아닌 선들이 겹쳐 있는 구간일 거다. 속도보다 코스를 읽는 눈이 살아야 한다.
열기층 불씨 지대는 더 멀었다. 유리화된 지면과 열기 왜곡 속에서 진짜와 가짜 반응이 섞여 있을 곳.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불씨 질주는 먼저 들어온다고 끝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끝 지점에 놓인 불씨를 골라 살아 있는 채로 들고 돌아와야 한다.”
“가짜면?”
군중 속 누군가가 외쳤다.
“값이 깎인다.”
진행자가 답했다.
“빈손이면?”
“더 크게 깎인다.”
이번엔 나심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하즈란에선 빠르기만 한 손보다, 끝까지 맞게 쥐는 손이 더 비싸거든.”
그 말은 얄미웠지만 정확했다.
이건 단순히 누가 먼저 튀어나가느냐를 보는 판이 아니다.
기체를 다루는 손,
길을 읽는 손,
마지막에 진짜를 가르는 손,
그리고 그걸 꺼뜨리지 않고 돌아오는 손을 같이 보는 판.
시온은 본능적으로 아카를 찾았다.
아카는 여전히 나히라 곁에 있었다. 근데 완전히 무표정하진 않았다. 구역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고, 열기층 불씨 지대가 나왔을 때만 그 눈이 잠깐 더 오래 머물렀다.
세른도 거의 동시에 그쪽을 봤다.
시온은 그 짧은 겹침을 놓치지 않았다.
진짜 시험은 마지막 구역에 있다.
그리고 저 둘은 이미 그걸 알고 있다.
진행자가 외쳤다.
“외부 손 둘은 예외로 따로 붙는다.”
군중 시선이 한꺼번에 이쪽으로 몰렸다.
“첫째.”
그가 손을 뻗었다.
“한지우. 시온.”
시온은 심장이 한번 크게 내려앉았다.
예상했던 이름인데도, 실제로 그렇게 묶여 불리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여기까지 와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감각이었다. 한지우와 자신. 이건 뜬금없는 배정이 아니라 원래 이렇게 묶여야 맞는 조합이었다.
한지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말이 되네.”
그가 낮게 말했다.
시온은 거의 웃을 뻔했다.
긴장감 한가운데서 그 말이 이상하게 등을 바로 세웠다.
진행자가 두 번째를 외쳤다.
“카엘. 세른.”
카엘은 즉시 세른 쪽을 봤고, 세른은 이미 그쪽을 보고 있었다.
둘은 한 번도 같이 맞춰 본 사람들처럼 익숙하진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서로에게 필요한 축이 뭔지는 한 번에 이해한 얼굴들이었다. 몸으로 버티는 손과, 구조를 읽는 손. 하즈란 같은 판에선 느려 보여도 안 죽는 조합이었다.
루하이가 그걸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와, 진짜 제대로 말아 올렸네.”
나심이 웃었다.
“그러니까 재밌지.”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신호는 한 번이다.”
그가 말했다.
“적열탄이 터지고, 그 불씨가 모래에 닿는 순간 전부 출발한다.”
붉은 천막 바깥쪽 높은 기둥 위로, 이미 붉은 금속 탄두 하나가 걸려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밤만 기다렸다는 듯이.
한지우가 낮게 말했다.
“기체부터 봐야 해.”
시온이 고개를 돌렸다.
한지우는 벌써 가장 덜 죽은 기체와, 가장 죽어 가는 기체를 동시에 고르는 얼굴이었다.
“내가 살릴 만한 걸 먼저 본다.”
그가 말했다.
“넌 길부터 외워.”
시온은 바로 답했다.
“알았어.”
짧았다.
근데 그 두 마디면 충분했다.
자히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달려라.”
그가 낮게 말했다.
“그리고 왜 그 불씨를 너희 손에 쥐어야 하는지 증명해.”
그 문장은 외지인 팀 둘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온은 분명하게 느꼈다.
저 말은 지금 자기들한테 가장 무겁게 떨어졌다.
열둘의 팀이 붉은 천막 바깥 출발선으로 갈라져 움직였다.
현지 팀들은 익숙한 손으로 자기 기체에 올라탔다.
한지우는 줄지어 선 스키프들 사이를 빠르게 훑다가, 가장 반들반들한 놈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게 죽어 가는 놈 앞에서 멈췄다. 오른쪽 부양판이 다른 쪽보다 늦게 뜨고, 엔진 떨림도 고르지 않았지만, 반응 자체는 거짓이 없었다. 억지로 힘을 숨기거나 좋은 척하는 기체보다, 어디가 죽었는지 바로 드러내는 기체가 오히려 손에 맞는다는 걸 한지우는 아는 얼굴이었다.
“이건 한 번은 버틴다.”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시온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그 낡은 선체를 다시 봤다. 누가 봐도 폐품에 가까운데, 한지우 손엔 이미 살릴 수 있는 선과 버려야 할 선이 다 읽혀 있는 듯했다.
반대편에서 카엘은 날렵한 활주기보다 골조가 두껍고 하부 프레임이 단단한 기체 앞에 섰다. 속도만 보면 뒤처질 수도 있는데, 잔해 지대를 통과할 땐 저런 놈이 끝까지 안 찢긴다. 세른은 그 옆에서 선체 하중과 조향축 틀어짐을 짧게 훑더니, 최단 거리보다 살아서 복귀할 확률이 더 높은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느려도 안 죽겠네.”
카엘이 말했다.
“지금은 그게 더 비싸.”
세른이 답했다.
중정 전체가 그 움직임을 따라 같이 기울었다.
그리고 높은 기둥 위로 적열탄을 든 손이 올라가는 걸 보는 순간,
시온은 한 번 더 확실히 느꼈다.
하즈란은 지금,
자신들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무엇을 끝까지 쥘 손인지 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