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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규칙이 먼저 휘어진 순간

# 52화. 규칙이 먼저 휘어진 순간 살아남은 팀 셋이 거의 같은 불씨 후보 앞에 붙는 순간, 열기층 불씨 지대의 공기 자체가 더 좁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시온은 자기 숨이 가빠져서가 아니라, 주위 모든 선이 한 점으로 몰리는 감각 때문에 숨을 얕게 골랐다. 왼쪽 아래, 금속 파편과 유리질 지면이 맞닿는 경계. 거기 붙은 아주 작은 붉은 점. 너무 둔해서 처음엔 불빛처럼도 안 보였고,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다른 화려한 반응들 사이에 묻혀 있었다. 근데 지금은 셋 다 그쪽을 보고 있었다. 한지우와 시온. 검붉은 활주기. 카엘과 세른. 살아남은 손들이 결국 같은 곳에 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시온은 자기 눈이 완전히 빗나간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누가 먼저 닿느냐보다, 누가 먼저 잘못 움직이느냐. 한지우는 스키프를 더 낮게 깔았다. 오른쪽 부양판 반응은 이미 한 번 더 죽어 있었고, 선체 아래선 금속 긁히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기체는 오래 못 버틸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한 번은 정확해야 했다. “거리만 잡아.” 그가 낮게 말했다. “내가 넘기면 네가 집어.” 시온은 대답 대신 몸을 낮췄다. 오른쪽 바깥에서 붙어오던 검붉은 활주기는 훨씬 반응이 날카로웠다. 속도를 죽였는데도 선체가 가볍게 미끄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 낮게 붙으며 지면 반발을 읽고 있었다. 전년도 우승팀답게, 여기까지 살아남은 게 운이 아니라는 게 보였다. 탑승자 둘도 보였다. 앞쪽을 잡은 조종사는 팔을 거의 안 움직였고, 뒤쪽에서 몸을 뺀 다른 하나는 이미 손을 뻗을 각도를 보고 있었다. 빨리 잡는 것보다, 남이 먼저 망설이는 찰나를 가져가는 사람들의 손이었다. 북쪽에서 내려붙는 카엘과 세른 조는 둘보다 반 박자 늦었다. 근데 느린 게 아니라 신중한 쪽에 가까웠다. 세른은 끝까지 다른 두 팀이 뭘 버리고 뭘 좇는지를 보고 있었고, 카엘은 활주기를 필요 이상으로 안 눌렀다. 저 둘은 지금 먼저 덮치는 쪽이 아니라, 마지막에 진짜만 남을 때까지 버티는 쪽이었다. “셋 다 같은 데 붙었어.” 카엘이 낮게 말했다. 세른이 짧게 답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위험해.” 시온도 그걸 느꼈다. 불씨 앞에서 사람은 두 번 망한다. 하나는 가짜를 진짜로 믿을 때, 다른 하나는 진짜를 봤는데도 남보다 먼저 잡으려다가 판을 망칠 때. 그리고 지금은 후자에 더 가까웠다. 한지우가 스키프 코를 미세하게 비틀어 검붉은 활주기와의 각도를 조정했다. 정면으로 박는 대신, 서로가 동시에 손 뻗기 애매한 선을 만든다. 시온은 그 의도를 곧장 읽었다. 지금 필요한 건 충돌이 아니라 반 박자다. 자기가 집을 수 있는 반 박자. 그때, 검붉은 활주기 뒤쪽 탑승자가 먼저 몸을 뺐다. 너무 빨랐다. 시온은 거의 반사적으로 알았다. 저건 확신하고 움직인 속도라기보다, 남보다 먼저 손만 올려 놓겠다는 속도다. “지금 아니야.” 시온이 거의 외치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과 거의 동시에, 상대 손이 붉은 점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열기층 아래 공기가 한 번 더 크게 뒤틀렸다.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자연스러운 왜곡이 아니었다. 아래쪽 유리질 지면 어딘가에서 뜨거운 숨을 억지로 밀어 올리는 것처럼, 공기 층이 한쪽으로 말려 올라왔다. 낮게 붙어 있던 불빛 셋이 동시에 더 크게 살아나는 척했고, 시온이 찍은 작은 붉은 점 주변에서도 갑자기 다른 붉은 반응 둘이 같이 터졌다. 너무 노골적이었다. 시온은 그 순간 거의 확신했다. 누가 건드렸다. 판을. 검붉은 활주기 뒤쪽 손은 바뀐 반응에 한순간 흔들렸다. 그 짧은 흔들림 하나가 충분했다. 한지우가 바로 스키프를 더 낮게 밀어 넣었다. “지금.” 시온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갔다. 뒤 발판을 차고 몸을 앞으로 던지는 순간,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가까이서 본 불빛들은 더 엉망이었다. 큰 것들은 오히려 너무 요란했고, 방금까지 진짜라고 확신했던 작은 점조차 공기 흔들림 안에 잠깐 묻혔다. 근데 시온은 억지로 큰 반응을 안 봤다. 살아 있는 척하는 건, 항상 먼저 커진다. 진짜는 버틴다. 그는 바닥 가까이 시선을 낮췄다. 유리질 틈 아래, 금속 파편 그림자 옆, 계속 작게만 남는 붉은 점 하나. 다른 것들이 흔들리는 동안에도, 저건 자기가 뭔지 증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냥 남아 있었다. 시온 손이 그쪽으로 뻗었다. 바로 옆에서 검붉은 활주기 쪽 손도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더 먼저 닿은 건 상대였다. 시온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근데 다음 순간, 상대 손 안에서 터진 건 또 지나치게 쉬운 빛이었다. 붉은 반응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시온은 알았다. 가짜다. “그거 아니야!” 시온이 바로 소리쳤다. 상대는 이미 늦었다. 그 불빛은 손안에서 한 번 크게 살아나는 척하더니, 바로 타 버리듯 꺼졌다. 동시에 아래 유리질 지면이 미세하게 갈라지며, 활주기 쪽 균형이 크게 흔들렸다. 한지우가 욕을 뱉었다. “숙여!” 시온은 그대로 더 낮게 몸을 눌렀다. 거의 같은 순간, 카엘이 타는 활주기가 바깥선에서 안쪽으로 깊게 들어왔다. 카엘은 남의 손이 먼저 뻗는 걸 보고도 같이 덮치지 않았다. 대신 세른이 짚은 가장 덜 흔들리는 선을 끝까지 버텼고, 덕분에 방금 갈라진 지면 바깥쪽을 가장 안정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밑이다.” 세른이 짧게 말했다. “큰 반응 말고, 아래.” 그 말은 이미 시온이 본 것과 같았다. 시온 손끝이 마침내 그 작은 붉은 점에 닿았다. 처음 느낌은 빛보다 열에 가까웠다. 근데 그 열은 화려하지 않았다. 손안으로 튀어 오르지도 않았고, 자기를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냥 죽지 않았다. 시온은 그 순간 알았다. 진짜다. 그와 동시에, 열기층 아래쪽 어딘가에서 낮고 거친 금속음이 울렸다. 한 번. 그리고 곧 두 번째. 그 소리는 경기장 자연음과 달랐다. 무너지는 소리라기보다, 누군가 미리 걸어 둔 장치를 이제야 당기는 소리에 가까웠다. 세른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이상해.” 카엘이 짧게 물었다. “뭐가.” “너무 빨라.” 세른이 말했다. “공기층이 이렇게 한쪽으로 몰릴 이유가 없어.” 그 순간, 관람대 쪽에서도 웅성거림이 아니라 진짜 소란이 터졌다. 루하이가 거의 난간에서 떨어질 듯 몸을 내밀며 소리쳤다. “저거 누가 건드렸어!” 아테르가 곧장 아래 열기 흐름을 봤고, 서린은 이미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사람. 열기층 구역 가장자리, 진행선 바깥이어야 할 위치에서 그림자 몇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경기 손들이 아니었다. 회수 손도 아니고, 일반 감시도 아니었다. 미리 들어가 있었던 사람들처럼, 장치 위치를 아는 움직임이었다. 서린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왔네.” 아카는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근데 나히라 곁에 선 채 처음으로 숨을 아주 짧게 들이켰다. 그 미세한 반응 하나만으로도, 지금 깨지는 게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건 충분했다. 시온은 아직 손안의 불씨를 꽉 쥔 채였다. 이건 가짜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근데 손안에서 아주 낮고 끈질기게 살아 있었다. 진짜였다. 문제는, 이제부터 이 진짜를 들고 돌아가는 길이 더는 경기 규칙 안에만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한지우가 스키프를 억지로 틀어 시온 쪽으로 붙이며 말했다. “올라!” 그와 동시에, 열기층 아래 공기가 세 번째로 크게 뒤틀렸다. 이번엔 살아 있는 척하는 불빛 몇 개가 동시에 터져 오르며, 방금까지 남아 있던 진입선 자체를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온은 알았다. 규칙은, 지금 막 먼저 휘어졌다.
응원은 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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