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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판이 경기이기를 그만둔 자리

# 53화. 판이 경기이기를 그만둔 자리 시온이 불씨를 손에 쥔 순간부터, 열기층 불씨 지대는 더 이상 경기장이 아니었다. 한지우가 스키프를 억지로 틀어 시온 쪽으로 붙였고, 시온은 흔들리는 유리질 지면 위를 거의 미끄러지듯 박차고 올라탔다. 발이 뒤쪽 보조 발판에 간신히 걸리는 순간, 스키프가 바로 바깥으로 튀었다. 뒤는 이미 갈라지고 있었다. 방금까지 진짜처럼 사람을 부르던 불빛 몇 개가 한꺼번에 터져 올랐고, 그 밑 유리층이 연쇄적으로 금을 토해냈다. 자연스럽게 열이 뒤틀린 게 아니라, 누가 미리 심어 둔 장치가 이제 와서 한 번에 열기층을 흔드는 모양이었다. 살아남은 척하던 불빛들은 더 요란하게 타올랐고, 진짜 불씨를 못 집은 팀들은 그 화려한 반응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속았다. 검붉은 활주기 쪽이 먼저 크게 흔들렸다. 가짜를 집었던 뒤 탑승자가 손을 털어내듯 불씨를 놓쳤지만, 이미 늦었다. 활주기 한쪽 선이 갈라진 유리층에 미끄러졌고, 앞 조종사는 억지로 균형을 잡느라 복귀각을 잃었다. 노련한 팀이라 바로 죽진 않았지만, 최소한 방금 전까지의 침착함은 깨졌다. “뒤 안 봐도 돼?” 시온이 짧게 물었다. 한지우는 바로 답했다. “지금은 앞만 봐.” 스키프 오른쪽 부양판이 한 번 더 늦게 들렸다. 선체가 기우뚱했지만, 한지우는 그 흔들림까지 복귀선으로 써먹듯 기체를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어 냈다. 화려하게 꺾는 게 아니라, 무너지는 지형이 밀어내는 힘을 거꾸로 타는 조종이었다. 시온은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손안 불씨를 꽉 쥐었다. 뜨겁긴 한데, 타는 열은 아니었다. 살아 있는 맥박처럼 낮고 끈질기게 손바닥 안쪽을 두드리는 열. 가짜처럼 번쩍이지 않았고, 잡는 사람을 과시하듯 감싸지도 않았다. 그냥 꺼지지 않았다. 진짜였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카엘과 세른 쪽 활주기는 한 박자 늦게 깨지는 지형 바깥을 파고들었다. 세른은 이미 경기 복귀선보다 붕괴 흐름을 먼저 보고 있었다. 어디가 아직 버티고, 어디가 다음으로 죽는지. 카엘은 그 지시대로 기체를 눌렀다. 남들이 복귀 깃을 먼저 향해 돌 때, 저 둘은 일단 안 죽는 선부터 고른다. 그게 지금은 더 맞았다. “복귀선 막힌다.” 세른이 낮게 말했다. “우회?” “아직 아니야. 한지우 조 먼저 빠지는 거 봐.” 카엘은 짧게 혀를 찼다. “저런 때는 꼭 앞이네.” 근데 불만 같진 않았다. 오히려 저런 판에서 누가 먼저 길을 찢고 나가는지 정확히 아는 쪽에 가까웠다. 관람대 쪽은 이미 소란을 넘어서고 있었다. 도박꾼들은 처음엔 더 크게 환호했다. 판이 깨질수록 돈도 더 크게 튄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근데 열기층 붕괴가 복귀선 쪽까지 건드리기 시작하자 반응이 갈렸다. 누군가는 판돈보다 자기 목숨부터 챙기려 뒤로 물러났고, 누군가는 오히려 난간 위로 더 몸을 내밀었다. 하즈란식 경기란 원래 조금쯤 죽는 사람도 보는 판이었지만, 지금은 경기 바깥 손이 안쪽을 건드린 흔적이 너무 선명했다. 루하이는 난간 끝에 매달린 채 거의 외치듯 말했다. “저거 경기 손 아니야!” 아테르가 곧장 아래쪽 그림자 흐름을 쫓았다. “보입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배치가 너무 빠릅니다.” 서린은 이미 다른 걸 보고 있었다. 열기층 구역 바깥 가장자리, 원래 회수 손이 들어가면 안 되는 선에서 세 그림자가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는 열기 장치 쪽, 하나는 복귀 유도선 쪽, 하나는 경기 손들이 서로 물어뜯기 좋은 좁은 병목 쪽. 우연히 들어온 게 아니라, 미리 역할을 나눠 들어간 사람들. “하룬이네.” 서린이 아주 낮게 말했다. 아테르가 바로 그녀를 봤다. “확실합니까.” “이 바닥에서 저렇게 장치랑 회수선이 같이 흔들리는 건 우발이 아니야.” 서린이 답했다. “누군가 판을 깨기로 하고 들어간 거지.” 루하이가 얼굴을 구겼다. “미친, 경기장까지 뜯어먹는다고?” 서린은 시선을 안 떼고 말했다. “하즈란에서 제일 비싼 건 규칙을 믿는 놈이지. 규칙 깨는 놈이 아니라.” 그 말은 시온 귀엔 안 들어갔지만, 공기엔 충분히 남았다. 나심은 그때까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소란이 커질수록 주변 사람들 얼굴을 더 빨리 읽고 있었다. 판이 깨졌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근데 지금 그의 표정엔 당혹보다 계산이 먼저 떠 있었다. 이 붕괴를 어떻게 말로 덮고, 누구 책임으로 넘기고, 무엇만은 지킬지 재는 얼굴. 반면 하룬은 더 조용했다. 그는 열기층 끝과 복귀선 사이를 보며 아주 짧게만 움직였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더 불길했다. 나심이 말을 정리하는 손이라면, 하룬은 이미 저 안에서 무엇이 들어갔고 무엇이 나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카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근데 나히라가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그녀 앞쪽을 막아섰다. 그건 보호라기보다, 지금부터는 아카가 보여도 되는 표정까지 가려야 한다는 식의 막음이었다. 아카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눈은 더 이상 경기 손을 쫓지 않았다. 이미 불씨가 어느 손에 들어갔는지 안 사람의 눈이었다. 시온은 한지우 뒤에서 숨을 얕게 골랐다. 원래라면 지금쯤 복귀선 각도를 읽고 있어야 했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지면이 계속 갈라지고, 가짜 불빛이 터져 시야를 엉망으로 만들고, 규칙 바깥 손들이 안쪽을 흔들고 있다. 이건 복귀가 아니라 이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복귀선 보이냐?” 한지우가 물었다. 시온은 앞쪽을 봤다. 원래 경기 손들이 돌아가야 할 붉은 유도선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근데 절반쯤은 살아 있었고 절반쯤은 죽어 있었다. 어느 선은 아직 길처럼 보이는데, 그 바로 옆은 열기 붕괴 때문에 완전히 찢겨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 차이를 못 읽고 그대로 박을 것이다. “보이긴 해.” 시온이 말했다. “근데 저건 이제 경기선 아니야.” 한지우가 짧게 웃었다. “좋아. 그럼 내 방식으로 간다.” 그 한마디와 함께, 스키프가 붉은 유도선이 아니라 그 바깥쪽 반쯤 죽은 외곽 지면으로 더 낮게 눌러 붙었다. 규칙대로 복귀하는 선이 아니라, 규칙이 무너진 순간 조종사만이 고를 수 있는 이탈선. 바로 그때 검붉은 활주기가 다시 뒤를 붙었다. 가짜 불씨를 놓친 팀이었는데도,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난전 속에선 남 손에 든 진짜를 빼앗는 쪽이 더 빠를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노련한 팀답게 계산도 빨랐다. “온다.” 시온이 짧게 말했다. 한지우는 뒤를 안 보고도 알았다. “잡아.” 그 말은 불씨를 놓치지 말란 뜻이기도 했고, 지금부터는 몸도 준비하란 뜻이기도 했다. 북쪽에서 카엘과 세른도 같은 검붉은 활주기를 보고 있었다. 세른이 아주 낮게 말했다. “저 팀, 경기보다 탈취로 바꿨어.” 카엘이 대꾸했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 경기 아니네.” 세른은 짧게 답했다. “진작 아니었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열기층 가장자리 장치 하나가 더 크게 터졌다. 붉은 반응이 하늘로 번지며, 남아 있던 유도선 하나를 통째로 먹어 치웠다. 그 빛이 너무 커서 관중석에서도 비명이 터졌고, 뒤늦게 도망치던 사람 몇이 난간 아래로 서로 엉켜 넘어졌다. 중정은 완전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시온은 손안 불씨를 더 세게 쥐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걸 증명해서 점수를 받는 게 아니다. 이걸 들고 살아서 빠져나가는 거다. 그리고 아마, 이 불씨를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다음 추격의 이유가 됐다. 한지우가 이를 악문 채 말했다. “꽉 잡아.” 스키프가 갈라진 유리층 바깥을 거의 긁듯 치고 나갔다. 뒤에선 검붉은 활주기가 붙었고, 옆쪽에선 카엘과 세른 활주기가 더 넓은 선으로 합류할 각을 보고 있었고, 관람대 위에선 규칙이 깨졌다는 걸 알아챈 사람들과 아직 돈부터 세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시온은, 이제 더는 누구도 이걸 경기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불씨 질주는 끝난 게 아니다. 근데 더 이상 하즈란이 처음 약속한 방식으로는 굴러가지 않을 거였다. 판은, 이제 경기이기를 그만뒀다.
응원은 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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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이야 — 순위도, 압박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