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진짜 하나를 들고 도망치는 법
# 57화. 진짜 하나를 들고 도망치는 법
합류는 끝이 아니라 선택의 시작이었다.
한지우 스키프와 카엘 활주기가 같은 외곽 아래선으로 내려붙자, 이제 네 사람은 처음으로 같은 문제를 같이 풀어야 했다.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가.
어떻게 진짜 불씨를 안 놓칠 것인가.
어느 기체가 앞을 열고,
어느 기체가 뒤를 끊고,
누가 손을 비우고,
누가 끝까지 쥘 것인가.
시온은 손안 불씨가 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진짜라는 건 확인됐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걸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짐이었다. 속도보다 우선순위를 바꾸고, 사람들 움직임까지 바꾸는 짐.
카엘이 먼저 낮게 말했다.
“붙는다.”
그 말은 감상이 아니라 거리 보고였다. 두 기체 사이 간격이 이제 아주 짧아졌다. 조금만 더 붙이면 사람 하나를 옮길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붙으면 같이 걸려 무너질 수도 있다.
세른이 바로 말했다.
“지금은 완전히 붙지 마.”
한지우가 짧게 물었다.
“이유.”
“우릴 한 번에 먹기 쉬워져.”
세른이 답했다.
“둘이 따로 보이면 쫓는 손도 갈린다. 근데 진짜가 어디 있는지 확실해지는 순간, 전부 한 줄로 붙어.”
한지우는 군말 없이 앞쪽 선을 훑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검붉은 활주기 하나가 가장 가깝게 물고 있었지만, 경기장 바깥 손들까지 본격적으로 냄새를 맡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두 기체가 완전히 한 덩어리로 붙는 순간, 지켜야 할 목표도 선명해진다.
카엘이 시온 손쪽을 한번 보고 물었다.
“그거 다른 데로 옮겨?”
시온은 거의 반사적으로 더 세게 쥐었다.
“아직은 안 돼.”
그보다 먼저 세른이 낮게 덧붙였다.
“옮기면 흔들린다.”
그 말이 정확했다.
진짜 불씨는 화려하진 않아도 살아 있다. 지금 손을 바꾸는 건 단순히 물건을 넘기는 게 아니라, 반응을 한 번 더 흔드는 일일 수 있다. 여기서 괜히 판단을 바꾸면 오히려 가짜에 속은 팀들처럼 자기 손으로 진짜를 죽일 수도 있다.
한지우가 짧게 결론 냈다.
“그럼 시온이 끝까지 든다.”
카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짧은 합의였다.
그런데 시온은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자기 손에 진짜가 남는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만큼 표적도 계속 자기 쪽으로 붙는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뒤쪽 검붉은 활주기는 다시 선을 좁히고 있었다.
이번엔 처음처럼 시험하듯 붙지 않았다. 앞 조종사가 아예 각을 낮추고, 뒤 탑승자는 손을 비우고 있었다. 빼앗아야 할 게 진짜인지 아닌지 더 확인할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지금 저 팀은 이미 확신하고 있다. 불씨는 한지우 조 손에 있다.
“확정했네.”
시온이 낮게 말했다.
세른이 곧바로 받았다.
“그러니까 지금 바꿔야 해.”
한지우가 눈썹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 옮긴다며.”
“불씨 말고 선.”
세른이 말했다.
“쫓기는 쪽을 바꿔야 해.”
카엘이 먼저 알아들었다.
“우리가 더 눈에 띄게 받는다는 거네.”
“응.”
세른이 답했다.
“한지우 조는 아래 더러운 선으로 빠지고, 우린 위에서 한 번 크게 보여 줘. 검붉은 쪽이 둘 중 하나만 물어야 하는 순간을 만들면, 불씨 든 손이 덜 잡힌다.”
한지우는 그 말을 듣고 웃지도 않았다.
대신 앞쪽 외곽선과 위쪽 깨끗한 선, 그리고 그 중간에 남은 죽은 골조 그림자를 다시 봤다.
“가능은 해.”
그가 말했다.
“근데 한 번은 진짜로 갈린다.”
카엘이 아주 담담하게 답했다.
“원래 같이 도망치는 건 그런 거지.”
시온은 그 대화가 너무 빨리 결론 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근데 또 이상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넷 다 설명보다 생존 쪽에 더 가까운 머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관람대 위에서도 변화는 읽혔다.
루하이는 아래에서 두 기체가 잠깐 붙었다가 다시 간격을 조정하는 걸 보고 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쟤네 지금 뭐 짜는 거야.”
서린이 아주 낮게 말했다.
“한쪽이 미끼 되겠지.”
아테르가 곧장 그녀를 봤다.
“어느 쪽이.”
“그건 아직 몰라.”
서린이 답했다.
“근데 진짜를 든 손은 점점 안 보이는 쪽으로 빠질 거야.”
그 말은 맞았다.
진짜를 쥔 손이 계속 선명하게 보이면, 하즈란 전체가 달려든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중요한 건 빠르기보다, **누가 진짜를 들었는지 잠깐이라도 흐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심은 아래를 보며 아주 미세하게 입매를 굳혔다.
그도 이제 알았을 거다. 경기판이 깨진 이상, 남는 건 진짜를 누가 들고 어디로 빠지는지뿐이라는 걸. 하룬은 여전히 조용했다. 자히르는 끝까지 안 움직였다. 근데 그 침묵이 더 오래 갈수록, 오히려 다음 개입은 더 무겁게 떨어질 것 같았다.
아카는 나히라 곁에서 두 기체를 번갈아 보다가,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시선을 아래 더러운 외곽선 쪽에 오래 두었다.
시온은 그걸 직접 볼 순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지금 자기가 쥔 진짜가 화려한 선이 아니라 가장 보기 싫은 선을 따라 빠져야 한다는 건 점점 더 분명해졌다.
바로 그때, 위쪽에서 검붉은 활주기가 더 깊게 파고들며 각을 붙였다.
이제는 진짜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한지우가 짧게 말했다.
“지금 정해.”
세른이 바로 답했다.
“우리가 위로 뜬다.”
카엘은 군말 없이 활주기 무게를 위쪽 선으로 실을 준비를 했고, 시온은 불씨를 더 깊게 쥔 채 한지우 등을 봤다.
한지우는 앞만 보고 있었다.
좋은 길이 아니라,
죽은 선,
더러운 선,
남들이 버린 선.
원래 그 사람이 제일 잘 쓰는 길.
“좋아.”
그가 낮게 말했다.
“그럼 우린 안 보이는 쪽으로 간다.”
그 말과 동시에,
두 기체가 처음으로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지고 동시에 갈라질 준비를 했다.
하나는 진짜를 숨기기 위해,
하나는 진짜를 쥔 손처럼 보이기 위해.
그리고 시온은 알았다.
이제부터는,
같이 도망치는 법이 아니라,
같이 속이는 법까지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