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증명을 들고 돌아가는 길
# 58화. 증명을 들고 돌아가는 길
갈라지는 건 쉬웠다.
문제는,
갈라진 뒤에도 같은 결과를 향해 살아남는 일이었다.
세른 말이 떨어진 직후, 두 기체는 서로 다른 의도를 품고 같은 외곽선을 찢어 나가기 시작했다.
카엘과 세른 활주기는 위쪽으로 한 번 크게 떴다. 완전히 높이 올라간 건 아니었다. 다만 아래 더러운 선을 타던 한지우 조보다 훨씬 더 눈에 띄는 쪽으로 기수를 세웠다. 누가 봐도 저쪽이 더 좋은 선을 타는 것처럼, 그리고 어쩌면 진짜를 가진 손이 저쪽일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반대로 한지우 스키프는 거의 바닥 가까이 붙었다. 죽은 사면과 끊긴 프레임 그림자 밑, 남들이 일부러 안 보는 쪽만 골라 파고들었다. 위에서 보면 길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보일 선. 경기 손이라면 점수 때문에 안 타고, 추격 손이라도 한 번쯤 망설일 선.
시온은 그 차이가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불안했다.
“먹히겠어?”
그가 낮게 물었다.
한지우는 앞만 보며 답했다.
“지금은 먹힌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붉은 활주기가 정말로 위쪽 카엘 조 쪽으로 각을 더 세웠다.
노련한 팀답게 최종 판단이 빨랐다. 진짜를 든 손은 안 보이게 빠지고, 미끼 쪽이 조금 더 화려한 선을 탄다. 이런 판에선 사람은 결국 더 보이는 걸 먼저 문다. 검붉은 활주기는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시온은 숨을 아주 짧게 내쉬었다.
먹혔다.
근데 완전히 안심되진 않았다. 저 팀이 영원히 속아 줄 리는 없다. 결국 어느 순간엔 다시 확인하려 들 것이고, 그 전까지 이쪽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하면 판은 다시 좁혀진다.
“얼마나 버텨?”
시온이 물었다.
이번엔 한지우가 웃듯 말했다.
“우리가 먼저 안 죽을 만큼.”
뒤쪽을 받는 카엘과 세른 활주기는 일부러 한 번 더 크게 살아 있는 선을 타는 척했다. 카엘은 대놓고 기체를 세워 검붉은 활주기가 물기 좋은 각을 만들었고, 세른은 그 와중에도 너무 쉽게 잡히진 않을 거리만 남겨 뒀다. 붙으려 하면 더 멀어지고, 놓치려 하면 다시 보이게 만드는 거리.
“조금만 더 끌어.”
세른이 낮게 말했다.
“지금 저 팀은 확인보다 확신이 먼저야.”
카엘이 짧게 답했다.
“그러다 진짜로 물리면?”
“그때는 버텨.”
카엘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좋은 작전이네.”
근데 말과 달리 손은 아주 정확했다. 활주기를 너무 빨리 밀지 않고, 그렇다고 검붉은 활주기가 완전히 포기할 만큼 죽이지도 않았다. 미끼 노릇을 한다기보다, 상대 확신을 계속 어긋나게 붙드는 손에 가까웠다.
관람대 위에서 루하이가 먼저 반응했다.
“저 팀 왜 갑자기 위로 떠?”
그가 거의 외치듯 말했다.
서린은 아래 시선을 안 뗀 채 답했다.
“보이려고.”
아테르가 바로 받았다.
“진짜를 숨기기 위해서군요.”
서린은 아주 짧게 웃었다.
“이제야 좀 같은 장면 보네.”
아테르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더 멀리 봤다. 경기장 바깥 손들까지 포함하면, 단순히 검붉은 활주기 하나를 속이는 걸로는 안 끝난다. 중요한 건 누가 처음으로 ‘진짜가 저기 없다’는 걸 눈치채느냐였다.
아카는 나히라 앞에 가려진 채로도, 아래 더러운 선 쪽을 오래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더 이상 경기 결과를 지켜보는 게 아니었다. 진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그 진짜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까지 같이 보는 눈이었다.
시온은 그걸 볼 순 없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지금 자신들이 달리는 게 단순 탈출선이 아니라, 다시 하즈란 중심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우회선일 수도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도망만 쳐서는 끝나지 않는다.
진짜를 들고 살아남았다면,
결국 그걸 누구 앞에 다시 들이밀어야 한다.
한지우가 갑자기 낮게 말했다.
“앞에 열린다.”
시온은 바로 앞을 읽었다.
더러운 외곽선 끝에서, 죽은 프레임 둘 사이로 좁은 통로가 하나 열리고 있었다. 경기장 바깥 회수선으로 빠질 수도 있고, 반대로 다시 하즈란 안쪽 구조물 아래로 돌아붙을 수도 있는 애매한 갈림이었다. 정면은 너무 정리돼 있어서 회수 손 냄새가 났고, 아래쪽은 무너진 대신 누가 일부러 기다리긴 어려운 선이었다.
“아래.”
시온이 바로 말했다.
“정면 말고.”
한지우는 묻지 않았다.
스키프를 더 낮춰 그 갈림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선체 하부가 한 번 크게 긁혔고, 오른쪽 부양판이 거의 죽은 듯 꺼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시온은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만, 한지우는 그 마지막 들림까지 계산한 듯 중심을 바로 맞췄다.
“아직 산다.”
그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은 기체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자기들한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위쪽에선 검붉은 활주기가 드디어 카엘 조 쪽으로 더 깊게 붙었다.
이번엔 진짜로 물 생각이었다.
카엘 활주기 뒤를 향해 기수가 파고들었고, 뒤 탑승자도 다시 손을 뺐다. 세른이 그걸 보고 아주 짧게 말했다.
“이제 내려.”
카엘은 기다렸다는 듯 활주기를 옆으로 비틀었다.
위쪽 멀끔한 선이 아니라, 그 바깥 끊긴 프레임 그림자 쪽으로 한 번에 떨어졌다. 검붉은 활주기는 그 변화를 바로 못 따라왔다. 붙을 거리라고 생각한 곳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찰나,
두 팀이 마침내 다시 같은 아래 외곽으로 거의 동시에 모였다.
시온은 옆쪽에서 카엘 활주기 그림자가 다시 붙는 걸 보고 짧게 숨을 쉬었다.
됐다.
완전히 떼어 낸 건 아니어도,
한 번은 속였고,
한 번은 살아남았고,
이제는 진짜를 든 채 같은 선으로 다시 모였다.
세른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이제 바로 빠지면 쫓긴다.”
한지우가 낮게 물었다.
“그럼.”
“돌아가야 해.”
세른이 답했다.
“바깥으로 죽 달아나면, 하즈란 전체가 우리 쪽으로 모여. 근데 진짜를 들고 다시 중심 쪽 판으로 붙으면 얘기가 달라져.”
시온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의 몸으로 알아들었다.
맞다.
도망만 치면 진짜를 든 도둑이 된다.
근데 진짜를 들고 돌아가면,
적어도 판을 이긴 손으로 다시 설 수 있다.
카엘이 짧게 말했다.
“미친 소리 같긴 한데.”
서린도 아래 흐름을 읽다가 거의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미친 소리네.”
아테르는 그런데도 눈을 좁혔다.
그게 제일 맞는 수일 수 있었다.
하즈란 바깥으로 바로 빠지는 순간, 경기장 바깥 손들까지 전부 같은 방향으로 붙는다. 하지만 중심 판으로 되돌아가면, 적어도 규칙을 완전히 잃진 않는다. 자히르 앞에서 진짜를 든 손으로 다시 서는 것.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오히려 제일 큰 방패일 수도 있었다.
한지우는 짧게 웃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그럼 다시 들어가자.”
시온은 그 말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건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를 쥔 채 살아서 돌아가는 사람의 말 같았으니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두 기체는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하즈란 바깥으로 도망치는 선이 아니라,
진짜를 들고 다시 판 중심으로 돌아가는 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