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같은 추적망
# 7화. 같은 추적망
보존실 뒤쪽 균열은 사람 하나가 겨우 통과할 만한 폭이었다.
시온이 먼저 몸을 비틀어 들어가자, 부서진 금속 조각이 외투 옆면을 긁고 지나갔다. 뒤에서 서린이 바로 따라붙었고, 세른은 몸을 반쯤 숙인 채 균열 안쪽 구조를 훑으며 움직였다. 아테르는 맨 마지막까지 뒤를 확인한 뒤에야 안으로 들어왔다.
등 뒤에서 금속을 때리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방금 전보다 가까웠다.
정면 통로는 이미 들킨 셈이었다.
좁은 틈을 빠져나오자 바로 낮은 환기 배관 통로가 이어졌다.
오래전에 유지용으로 만든 구조라 천장은 지나치게 낮았고, 바닥은 기름과 먼지가 한데 엉겨 미끄러웠다. 숨 쉴 때마다 금속과 녹, 오래 묵은 단열재 냄새가 폐 안쪽으로 눌러붙었다.
서린이 낮게 욕했다.
“좋네. 도망길도 썩어 있네.”
“살아 있으면 됐지.”
시온이 앞을 보며 답했다.
세른이 바로 뒤에서 말했다.
“살아 있는 길이라 다행인 겁니다. 정식 도면상으론 이미 막힌 구간이니까요.”
“그걸 왜 너만 알고 있냐고.”
시온이 툭 내뱉자, 세른은 숨도 고르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발이 묶이는 길은 오래전부터 가문 바깥 사람들이 먼저 찾았습니다. 우리는 그걸 나중에 배웠을 뿐입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서린은 그 안에 달라붙은 오래된 서늘함을 바로 읽었다.
배웠다는 말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누군가에겐 생존이었고, 누군가에겐 관리였을 종류의 길.
그리고 지금 이 넷이 기어가는 배관과 유지교 역시, 예전부터 기록 바깥의 사람들과 물건이 조용히 빠져나가던 오래된 도피선의 잔해에 가까웠다.
앞쪽으로 기어가던 시온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모두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배관 위쪽에서 미세한 금속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가 바로 위 통로를 뛰어가는 발소리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무게가 다른 셋, 넷. 그리고 아주 짧게 끊기는 전자음. 제국식 통신 절단 장비가 근거리에서 작동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아테르가 낮게 말했다.
“위를 닫기 시작했군요.”
서린이 바로 받았다.
“그럼 아래는 더 빨라지겠네.”
마치 그 말에 답하듯, 배관 아래쪽 어디선가 낡은 덮개 하나가 크게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정식 진압조가 아니라, 항구 바닥 쪽 인간들이 밑에서부터 길을 타고 올라오는 방식이었다.
세른이 짧게 중얼거렸다.
“양쪽입니다.”
시온은 얼굴을 찌푸렸다.
“좋아. 진짜 같은 추적망이네.”
이번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앞 통로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더 좁지만 곧장 외곽 유지교 아래로 빠지는 길, 다른 하나는 조금 넓지만 중간에 열려 있는 점검구가 두 번 있었다. 빨리 나갈 수 있는 쪽은 후자였지만, 누가 위아래에서 동시에 훑기 시작한 지금 상황에선 점검구가 있는 길이 더 위험했다.
세른이 먼저 말했다.
“왼쪽은 느리지만 닫히지 않습니다.”
“오른쪽은?” 서린이 물었다.
“빠르지만 중간에 두 번 드러납니다.”
시온은 망설이지 않았다.
“왼쪽.”
아테르가 바로 말했다.
“느린 길은 뒤를 붙입니다.”
시온이 어깨 너머로 비웃듯 말했다.
“빠른 길은 들키면 끝이잖아.”
“느린 길도 끝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고를래.”
둘의 말이 다시 부딪치려는 순간, 서린이 낮게 끊었다.
“좋아, 둘 다 입 다물고.
시온 말이 맞아. 지금은 빠른 길보다 안 들키는 길이 먼저야.”
세른도 곧장 동의했다.
“동감입니다.
위쪽은 제국이 닫고 있고, 아래는 소문 듣고 붙은 쪽이 올라옵니다. 노출되면 대응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더 불리합니다.”
아테르는 잠깐 침묵한 뒤 짧게 말했다.
“…왼쪽으로 갑니다.”
시온은 그제야 다시 몸을 움직였다.
배관은 점점 더 좁아졌다.
이제는 허리를 숙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기어가야 했다. 금속 격자 아래로 항구 외곽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 밑으로는 끝도 없이 얽힌 유지교와 폐선체 그림자가 겹쳐져 있었다.
서린이 뒤를 돌아보며 속삭였다.
“저쪽 둘 따라붙는 놈들, 소리 분리돼.”
“몇?”
“위 셋, 아래 둘.
근데 아래 둘은 돈 받고 뛰는 쪽 같아. 발이 가벼워.”
시온이 작게 혀를 찼다.
“브로커 붙었네.”
“붙을 만했지.”
세른이 덧붙였다.
“항구 안에서 기록수 소문이 퍼진 순간부터 예상했습니다.”
시온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예상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세른의 답은 차갑고 짧았다.
“당신도 먼저 말해주는 성격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배관 뒤쪽에서 덮개 하나가 완전히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길을 제대로 찾은 거였다.
“뛴다.”
이번엔 아테르가 먼저 말했다.
시온이 돌아봤다.
정리된 인간 입에서 그런 말이 먼저 나오는 게 약간 우습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좁은 배관이 끝나는 지점엔 아래쪽 유지교로 떨어지는 수직 사다리가 하나 있었다.
문제는 사다리 아래 공간이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외곽 유지교 아래엔 임시 전력선과 폐수 배출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한 번 잘못 디디면 소리도 크게 나고 발목도 나가기 좋았다.
시온이 아래를 훑고 즉시 말했다.
“내가 먼저.”
아테르가 반사적으로 받았다.
“무모합니다.”
“길 읽는 건 내가 더 빨라.”
“확신할 수 없—”
서린이 다시 끊었다.
“확신할 시간 없어.”
그리고는 시온 등을 짧게 밀었다.
“가, 개코.”
시온은 욕 한 마디 삼킨 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발끝이 첫 발판을 찾고, 손이 녹슨 옆봉을 잡고, 몸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빠졌다. 중간 한 칸은 완전히 부식돼 비어 있었지만, 그는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옆 배관을 디뎌 무게를 넘겼다.
아래에 먼저 닿은 뒤, 시온이 위를 올려다봤다.
“와.”
서린이 두 번째로 내려왔다.
그녀는 중간 부식 칸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시온이 밟았던 배관 옆선을 그대로 탔다. 내려오자마자 옆으로 한 칸 비켜서며 위를 향해 말했다.
“다음.”
세른은 사다리보다 아래 구조를 먼저 계산하는 눈이었다.
어디를 밟아야 소리가 덜 나는지, 어디가 겉만 멀쩡하고 안쪽이 빈 금속인지 거의 한 번에 읽어냈다. 내려오는 동작엔 힘 낭비가 없었다.
마지막은 아테르였다.
시온은 위를 보다가 아주 잠깐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제복으로 이런 길 자주 타나 봐?”
아테르는 사다리 중간에 선 채 짧게 답했다.
“오늘 처음입니다.”
서린이 짧게 한숨을 뱉었다. 첫날부터 이 꼴이라니.
“당신 덕분이죠.”
시온이 피식 웃을 뻔한 순간, 위쪽 배관 입구에서 손전등 빛 하나가 번쩍 비쳤다.
“숙여!”
서린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가 몸을 낮췄다.
광선이 아래 유지교를 훑고 지나갔다. 아주 잠깐만 늦었어도 바로 걸릴 거리였다.
세른이 속삭이듯 말했다.
“더 이상 수직 이동은 불가능합니다. 곧 위치 잡힙니다.”
시온은 아래 유지교 왼편을 가리켰다.
전력선 묶음 뒤로 절반쯤 무너진 점검 통로가 보였다. 성인 하나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큼 좁았지만, 그 끝에서 다시 바깥 정박층 쪽으로 빠질 수 있는 구조였다.
“저기.”
아테르가 즉시 물었다.
“확실합니까.”
“아니.
근데 지금 제일 덜 죽는 길 같아.”
서린이 바로 받았다.
“그럼 그게 확실한 거지.”
넷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순서가 달라졌다.
시온이 길을 읽고, 서린이 뒤쪽 시야를 잘라주고, 세른이 실제 추적 간격과 이탈 각도를 계산하고, 아테르가 남은 흔적이 제국식 봉쇄선에 어떻게 읽힐지를 예상하며 가장 덜 나쁜 선을 골랐다.
처음으로, 각자 잘하는 게 다르게 맞물렸다.
그건 신뢰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이런 종류의 탈출에선 서로 못 믿는다는 사실보다, 서로 없으면 더 빨리 죽는다는 사실이 먼저였다.
점검 통로 절반쯤을 지났을 때, 바깥으로 통하는 격자 너머에서 항구 외곽이 한 번에 열렸다.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 안으로 몰려들었고, 멀리선 경계등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제국이 위쪽 출입선을 닫고 있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아래쪽 부두에선 전혀 다른 종류의 소란이 일었다.
민간 화물선 둘이 급히 선로를 바꾸고, 술집 골목 쪽에선 사람 몇이 돈 냄새 맡은 짐승처럼 같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누가 뿌렸는지 몰라도, 이미 아래쪽엔 현상과 소문이 풀린 상태였다.
시온이 그걸 보고 낮게 욕했다.
“진짜 다 왔네.”
아테르도 바깥을 보며 짧게 말했다.
“제국은 위를 닫았고.”
서린이 이어받았다.
“아래는 돈에 움직이는 쪽이 퍼졌고.”
세른이 마지막 조각을 얹었다.
“지금부터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서로를 가려줄 수도 없습니다.”
시온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셋을 한 번씩 봤다.
검은 외투의 승인원 인간, 그보다 더 말 없는 그림자 같은 참모, 그리고 옆에서 이미 다음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서린.
좋아하든 말든, 여기선 넷이 한 묶음이었다.
그는 짧게 말했다.
“살아서 빠져나간다.
그다음은 그때 가서 다시 싫어하자.”
서린이 낮게 웃었다.
“좋네.
합의문치곤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은 충분하다.”
세른은 별말 없이 앞쪽 출구를 가리켰고, 아테르는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마침내 넷은 점검 통로 끝을 밀어젖히고 외곽 유지교 아래로 빠져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등 뒤에선 여전히 누군가 길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고, 앞쪽 항구는 이미 닫히는 길과 스며드는 길이 서로 엉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먼저 바깥 공기를 잡았다.
그리고 시온은 그제야 깨달았다.
준 아스테르의 이름을 본 순간부터,
이 넷은 각자 다른 세계 사람이 아니라
같은 추적망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리고 아마, 같은 조각을 본 사람들만이 결국 같은 길로 몰릴 거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