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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그들을 삼킨 열

# 32화. 그들을 삼킨 열 낙하는 추락과 같지 않았다. 적어도 한지우 손에 들어간 뒤의 낙하는 그랬다. 선체가 잔해 그림자 아래로 더 깊게 파고들자, 바깥 풍경이 완전히 뒤집혔다. 텅 빈 우주 검은막 대신, 잘려 나간 골조와 빈 적재링, 타다 남은 화물선 외피가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각도를 틀려도 바로 긁히거나 박살날 거리였다. 그런데도 한지우는 속도를 죽이지 않았다. 죽이면 죽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처럼, 망가진 축과 남은 추력 사이에서 선을 억지로 이어 붙이고 있었다. “버틴다. 버텨.” 그가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지금 죽으면 억울하잖아.” 그 말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는 애매했다. 배에 하는 건지, 엔진에 하는 건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건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셋 다 맞는 말처럼 들렸다. 세른이 패널 위를 훑으며 말했다. “뒤쪽 하나 아직 붙어 있습니다.” “끈질기네.” 서린이 낮게 말했다. “잡는 손이니까.” 카엘이 짧게 답했다. 이번엔 누구도 그 말을 흘리지 않았다. 바깥 잔광 하나가 또 선체 옆을 스쳤다. 직격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일부러 골조 조각을 깨뜨려 흩뿌린 쪽에 가까웠다. 깨진 금속 편들이 슬릿 바깥을 별가루처럼 스쳐 지나갔다. 겁주는 선이 아니라, 계속 흔들어서 결국 떨어뜨리려는 선. 저쪽도 이제 정면 격추보다 강제 추락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게 분명했다. 아테르가 짧게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좋은 적 있었냐.” 한지우가 되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평소처럼 가볍진 않았다. 한 번 더 충격이 들어오자 선체 하부가 거의 접히듯 울었다. 조종석 아래쪽 패널 둘이 동시에 어두워졌고, 엔진 응답이 아주 잠깐 끊겼다가 거칠게 되살아났다. 선체가 아래로 확 꺼졌다가, 한지우가 거의 비틀어 잡아채듯 자세를 되돌렸다. 시온은 손잡이를 쥔 손에 더 힘을 줬다. 바깥을 읽을 여유는 없었지만, 지금 선체가 얼마나 억지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몸이 먼저 알았다. 이건 비행이 아니라 버티기였다. 추락을 늦추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먼저 떨어지기 위한 마지막 버팀. 세른이 아주 낮게 말했다. “열기층 경계 옵니다.” 짧은 정적. 한지우가 웃음기 없이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는 진짜 감이다.” 서린이 물었다. “살릴 수 있어?” 한지우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종간을 한 번 더 꺾고 나서야 낮게 말했다. “안 부수고는 못 내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이번엔 누구도 ‘버틸 수 있냐’고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달라질 상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박아 넣는 수밖에 없었다. 열기층 바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슬릿 바깥으로 보이던 잔해와 검은막 사이에, 아주 얇고 흐릿한 왜곡이 먼저 걸렸다. 그다음엔 빛이 길게 흔들렸다. 멀쩡한 직선이 아닌데도 직선처럼 보이던 것들이 갑자기 전부 휘어졌다. 우주와 사막의 경계에 깔린 뜨거운 층이,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한 번씩 비틀어 버리는 구간. 하즈란 바깥 열기층이었다. 세른이 말했다. “지금 들어가면 뒤쪽 시야 한 번 끊깁니다.” “대신 우리도 눈 멀겠지.” 한지우가 답했다. “예.” “좋아. 공평하네.” 한지우가 마지막으로 추력을 밀어 넣었다. 선체가 열기층 바깥을 스치는 순간, 배 전체가 거대한 손에 붙들려 한 번에 비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테르가 벽면을 붙잡은 채 숨을 삼켰다. 세른은 처음으로 패널에서 눈을 떼고, 숫자 대신 진동 자체를 읽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카엘은 바닥 고정대를 움켜쥔 채 자세를 더 낮췄고, 서린은 누가 먼저 튕겨 나가도 바로 붙잡을 수 있도록 중앙 쪽으로 무게를 옮겼다. 시온은 그 순간, 재킷 안쪽의 종이가 땀에 젖은 천 사이에서 더 뜨겁게 눌리는 걸 느꼈다. `하즈란`, `아카`. 설명도 없이 적힌 두 단어가 마치 지금 선체를 끌어당기는 힘처럼 느껴졌다. 바깥에서 짧고 긴 섬광이 한 번 뒤엉켰다. 세른이 거의 즉시 말했다. “시야 끊겼습니다.” 한지우가 이를 악물었다. “좋아. 그럼 우리가 먼저 떨어진다.” 하지만 열기층은 숨는 장소가 아니라, 대가를 요구하는 장소였다. 선체 하부 어디선가 큰 파열음이 터졌다. 이번엔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 소리만으로도 다 알 수 있었다. 하나 남아 있던 하부 균형축이 결국 버텨내지 못한 거였다. 배가 아래로 확 꺼졌다. 정확히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지우가 조종간을 잡아당기며 거의 으르렁대듯 말했다. “좋아, 와라. 어디까지 떨어지나 보자.” “한지우.” 서린이 낮게 불렀다. “알아.” 그가 바로 잘랐다. “살려서 박을 거야.” 선체는 더는 우주선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하강선이었다. 남은 추력으로 자세만 겨우 잡고, 떨어지는 방향을 고르는 데 모든 힘을 쓰는 몸. 누가 먼저 죽느냐가 아니라, 누가 덜 부서진 채 바닥에 닿느냐의 문제로 규칙이 바뀐 상태였다. 슬릿 바깥으로 검은막이 걷히고, 그 아래 사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 보인 건 빛이었다. 별빛이 아니라, 뜨겁게 갈라진 지면이 반사하는 죽은 금속빛. 그 다음엔 모래였다. 붉지도, 금빛도 아닌, 오래 탄 철가루와 재가 섞인 회갈색 사막. 그리고 그 위를 길게 가르는 폐선체의 그림자. 반쯤 파묻힌 거대한 선박 골조들, 뜯기다 만 외부 갑판, 유리화된 평원 위로 비틀린 채 누운 적재 구조물들. 하즈란은 행성이라기보다, 끝까지 버려지지 못한 잔해들이 모래 위에서 아직 죽지 못하고 버티는 곳처럼 보였다. 시온은 짧게 숨을 삼켰다. 저기였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저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쪽지가 이곳을 가리켰고, 지금 이 낙하도 결국 저기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닌 방향. 읽을 수는 없어도 놓치면 안 되는 종류의 선. 세른이 빠르게 말했다. “좌측 폐선체 군 밀도 높습니다. 우측은 유리화 지면, 충격이 더 큽니다.” 아테르가 바로 이었다. “완전한 착륙은 포기해야 합니다. 마찰 길게 빼는 쪽으로.” “듣기만 해도 처참하네.” 한지우가 낮게 말했다. “좋아. 그럼 덜 죽는 쪽으로 간다.” 카엘이 처음으로 앞쪽을 보며 말했다. “왼쪽 두 번째 골조 아래 그림자. 바람이 덜 돈다.” 시온도 거의 동시에 말했다. “거기 안쪽, 아직 안 무너진 선 있어.” 한지우가 짧게 웃었다. “좋아. 이제 다들 말 붙네.” 그는 남은 추력을 왼쪽으로 한 번 더 쏟아 넣었다. 선체가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은 기계음이라기보다, 더는 억지로도 버티고 싶지 않다는 몸의 소리에 가까웠다. 왼쪽 외벽 어딘가가 골조를 긁으며 길게 뜯겨 나갔고, 충격이 배 전체를 비틀었다. 아테르는 그대로 무릎을 한 번 부딪혔고, 세른은 패널 모서리를 붙잡은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서린은 반사적으로 중앙 무게를 잡았고, 카엘은 한순간 조각보다 자기 몸부터 앞으로 던졌다. 누가 튕겨 나가면 막기 위해서였다. 한지우가 이를 악문 채 소리쳤다. “꽉 잡아, 꽉 잡으라고.” 두 번째 충격은 더 거칠었다. 이번엔 하부가 모래와 폐금속을 같이 긁었다. 마찰음이 선체 전체를 갈아버리는 듯 울렸고, 슬릿 바깥으로는 사막 먼지와 금속 파편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배는 미끄러지고, 꺾이고, 한 번 더 들렸다가 다시 찍혔다. 멈추는 게 아니라, 멈추기 위해 끝까지 부서지는 움직임이었다. 시온은 이를 악물었다. 손이 미끄러질 것 같았지만 놓지 않았다. 지금 놓치면 안 되는 건 손잡이만이 아니었다. 이 배, 이 사람들, 재킷 안 종이, 카엘이 안은 조각, 그리고 아직 보지도 못한 하즈란 안쪽의 무언가까지. 지금은 전부 한 덩어리였다. 마지막 충격은 이상할 만큼 짧았다. 쾅 하고 끝나는 소리 대신, 크게 긁히다 갑자기 멎는 느낌. 그 뒤엔 침묵이 왔다. 정확히는, 방금 전까지 모든 걸 덮고 있던 진동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생긴 텅 빈 침묵이었다. 누구도 바로 말을 하지 않았다. 엔진은 아직 어딘가에서 죽지 못한 숨을 몰아쉬듯 낮게 떨고 있었고, 선체 안쪽엔 뜨거워진 금속 냄새와 타버린 회로 냄새가 엉켜 있었다. 멀리선 바람이 불었다. 우주선 안에서는 들릴 리 없는 종류의 소리였다. 모래와 폐금속 사이를 쓸고 지나가는, 마른 행성의 바람 소리. 한지우가 가장 먼저 숨을 뱉었다. “좋아.” 그가 헛웃음처럼 말했다. “안 죽었다.” 서린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 “다들 상태 확인.” 세른이 짧게 대답했다. “의식 있습니다.” 아테르가 무릎을 짚고 몸을 세우며 말했다. “크게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카엘은 대답보다 먼저 조각을 확인했다. 아직 품 안에 있었다. 그제야 아주 짧게 숨을 뱉었다. 시온도 손잡이에서 손을 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재킷 안쪽 종이도 아직 거기 있었다. `하즈란` `아카` 두 단어는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무거워져 있었다. 한지우는 이미 조종석 패널을 두드리듯 훑고 있었다. 표정은 살아남은 안도보다, 망가진 걸 어디서부터 살릴지 보는 쪽에 가까웠다. “좋네.” 그가 낮게 말했다. “엔진 아직 안 죽었고, 배도 반쯤은 살아 있어. 대신 이 상태로는 절대 다시 못 떠.” 짧은 정적. 서린이 물었다. “얼마가 필요해.” 한지우가 패널 아래 깨진 응답선을 한 번 눌러 보더니 대답했다. “에테라이트.” 그 이름이 처음으로 선체 안에 떨어졌다. “그것도 제대로 된 걸로.” 한지우가 이를 악문 채 덧붙였다. “가짜 말고, 진짜. 이 정도로 망가진 축 다시 띄우려면 그거 없인 답 없어.” 시온은 슬릿 바깥을 봤다. 반쯤 파묻힌 폐선체 너머로, 모래와 열기와 죽은 금속빛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의 것도 아닌 곳. 누가 버리고 갔는지보다, 누가 여기서 아직 안 죽고 버티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곳. 엘리아는 이름 하나와 단어 하나만 남겼다. 한지우는 에테라이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막 어딘가엔 아카가 있었다. 살아남았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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